게다가 청풍도가에서는 북진본방이나 임방주들에게 애초에 험표를 팔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예 거래 자체가 불가능했다.

“청풍도가 놈들 횡포가 얼마나 심한지 읍내 장에 가봐야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남는 게 별반 없어”

“팔아도 손해고 사도 손해여. 그렇다고 다른 장에 가지도 못하게 막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놈들에게 빌려먹고 갚지 못한 죄가 있으니 그걸 갚기 전에는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닐 수밖에 더 있겠는가?”

“빚이 원수여!”

“그렇다고 산 입에 거미줄 치는가. 당장 굶어죽을 지경인데 빌려다가 라도 먹고 살자니 어쩌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남의 물건은 검불처럼 여기고, 지들 물건은 금처럼 쳐서 받아쳐먹으니 하는 말 아닌가?”

청풍읍장에 다녀온 장사꾼들과 장꾼들은 하나같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대로 가면 아무리 장사를 해도 청풍도가만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었다. 게다가 청풍도가에서는 북진본방이나 임방주들에게 애초에 험표를 팔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예 거래 자체가 불가능했다. 청풍도가에서 험표를 팔든 팔지 않든 북진본방으로서는 위기였다.

경강선들이 닻을 내리고 물건을 풀어놓으며 북진나루에 임시로 섰던 장에도 청풍도가의 보복이 두려워 인근 마을 사람들 발걸음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북진에 머물고 있던 경강상인들도 장사가 곤두박질치자 강 상류의 다른 나루터로 가야겠다며 술렁거렸다. 북진나루가 생기고 난 이후 이번처럼 여러 척의 경강선과 경강상인들이 머물며 북적거린 적이 없었다. 최풍원으로서도 이번이 경강상인들에게 북진본방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에 확실하게 경강상인들에게 북진을 각인시켜 또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기회는 그렇게 자주 오는 것이 아니었다. 기회가 왔을 때 붙들고 늘어지지 않으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청풍도가가 마귀가 되어 길을 막고 있었다. 최풍원도 어떤 방법으로든 길을 뚫어야 했다. 최풍원은 동몽회 대방 도식이를 불렀다.

“자네가 강을 건너가 광의·양평·연론·단리 임방주를 직접 모시고 오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해야 하네!”

그러고는 다시 강수를 불렀다.

“강수야 너는 교리·학현 임방주를 모시고 북진으로 오거라!”

최풍원이 임방주들을 부르면서 발이 빠른 비호나 박왕발이를 보내지 않고 대방 도식이와 택견의 고수인 강수를 보낸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혹여 전갈하러 가는 도중이나 오는 길에 청풍도가의 무뢰배들이라도 만난다면 비호나 박왕발이는 임방주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또 장순갑 몰래 기별을 한 것도 혹여 그가 청풍도가와 내통을 하고 있다면 북진본방에서 하려는 일이 새어나갈까 염려되어서였다.

북진임방 장순갑을 제외한 청풍 인근의 여섯 곳 임방주들이 모두 북진본방으로 모인 것은 그날 점심나절이었다.

“오늘 이렇게 근방에 있는 임방주님들만 급하게 부른 것은, 다들 아시겠지만 청풍도가가 점점 우리 목줄을 죄어오는 까닭에 이를 타개할 대안을 함께 찾아볼까 해서입니다. 그러니 여러 임방주들께서 여러 방안들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최풍원이 먼저 운을 뗐다.

“그렇다고 지금 저들과 맞선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고. 무슨 좋은 생각들 없겠는가?”

박한달 연론 임방주가 다른 임방주들을 둘러보며 의견을 물었다.

“장가가는데 색시 빠진 것 매루 장사도 장사꾼과 장꾼이 만나야 하는데 장꾼들이 자꾸 떨어져 나가니 어쩔 도리가 있는가?”

김길성 광의리 임방주였다.

“광의리는 지금 사정이 어떠한가요?”

“지난번 공납품을 보내고 받은 곡물들도 거개 다 청풍도가 놈들 수중으로 들어갔고, 그래도 빚이 남은 마을사람들에게 뭐라도 생기기만 하면 집안으로 들이닥쳐 찰그머리처럼 쪽쪽 빨아가니 우리 임방으로 들어올 물건이 없다네!”

“그건 우리 마을도 마찬가지라네! 며칠 전 청풍도가에서 떼거리로 몰려와서는 집집마다 돌아치며 애어른 가리지 않고 빌려먹은 양식을 내놓으라며 땡깡을 부리고 만약 여기 임방에 드나드는 그림자만 보여도 절단을 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네.”

김상만 양평 임방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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