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도가에서 험표를 발행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런데 청풍도가는 이득을 내는 것을 넘어 다른 속셈이 또 있었다. 그것은 청풍읍장을 중심으로 청풍관아 관내에 있는 모든 향시를 청풍도가에서 관장하기 위함이었다. 북진본방이 생기기 전가지만 해도 청풍도가는 청풍 관내의 덕산·수산·한수·금성장과 인근의 모든 마을을 수중에 넣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물산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떡 주무르듯 하며 독점으로 장사를 해왔다. 그러나 북진본방이 생기면서부터 점차 사정이 달라졌다. 청풍도가에서도 처음부터 북진본방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버렸다. 장사라는 것이 물건만 있다고, 사람만 모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연대가 서로 맞아야 가능한 법이었다. 그런데 읍장이 서는 관아 가까운 곳도 아니고, 강 건너 그것도 이따금씩 소금배나 짐배가 잠시 쉬어가는 그런 후미진 나루터 마을에 뭐시깽이를 만든다고 하니 청풍도가에서는 모두들 코웃음을 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북진본방이 생기고 청풍도가 언저리로 본방 관할의 임방들이 만들어지면서부터 청풍도가 상권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곧 망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북진본방과 임방들은 점차 거래하는 물량들이 늘어나며 청풍도가가 독식하던 물산들을 잠식해 들어갔고 급기야는 대궐에 공납품까지 불하받아 청풍인근에서 나는 봄 물산과 특산품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이제부터는 청풍읍장에서 물건을 팔고사려면 도가에서 발행해주는 험표를 사야 한대요.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한다는구먼유.”

박왕발이가 제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청풍도가에서 험표를 발행하는 것은 단순히 장사꾼이나 장꾼들 때문이 아닐 것이다. 달리 또 들은 얘기는 없더냐?”

최풍원이 청풍도가의 속내를 더 알아보기 위해 물었다.

“그 얘기만 했구먼유.”

“잘 생각해보거라!”

최풍원이 박왕발이를 다그쳤다.

“이젠 청풍장에서 물건주인이라 해도 제 멋대로 금을 흥정할 수도 없다는 말을 아부지가 한 것 같기도 하구먼유!”

“그것 말고 또 없더냐?”

“그게 뭔 말인지는 몰라도, 타동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더 비싸게 장세를 받는다는 얘기도 했구먼유!”

박왕발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야 최풍원은 청풍도가에서 험표를 발행한 속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짐작이라고는 하지만 뒤집어보나마나 청풍도가의 속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청풍도가에서 험표를 발행한 것은 자기들 마음대로 물건 값을 담합하기 위해서였다. 물건이라는 것이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정해진 가격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종류의 물건이라도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상식선에서 정해져 모두가 인정하는 선에서 사고 파는 것이었다. 일테면 덕산장에서 쌀 한 섬에 다섯 냥을 하는데 청풍장에서 일곱 냥 열 냥을 받을 수는 없었다. 쌀 한 섬에 보통 다섯 냥에 거래되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질이 좋은 쌀이라 해도 청풍장에서 다섯 냥 닷 푼을 받거나 여섯 냥을 받는 것이 상식이었다.

청풍장에서 가격 담합을 위해 험표를 발행한 것은 자신들의 물건은 비싸게 팔고 남의 물건은 헐값에 사들이기 위한 속셈이었다. 그리고 청풍도가의 화살 끝은 최풍원의 북진본방을 향한 것이었다. 북진본방의 상권이 커지자 위기감을 느낀 청풍도가에서 최풍원의 북진본방을 거꾸러뜨리고 숨통을 끊을 방도를 찾게 되었다. 북진본방의 숨통을 끊어버릴 칼로 쓰려는 것이 바로 험표였다. 험표를 발행하여 자기들끼리 임의대로 물건 값을 조작하고 타지역에서 오는 장사꾼들에게는 높은 장세를 부가하기 위해서였다. 험표를 가진 장사꾼만 장사를 할 수 있게 하고, 험표를 가진 장사꾼은 청풍도가에서 정한 가격에 따라 물건을 팔 수 있게 함으로써 북진본방과 임방들이 청풍장은 물론 인근의 다른 향시에서도 임의대로 장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청풍읍장은 그렇지만 인근의 다른 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북진본방과 임방은 당장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북진본방에서 가지고 있는 물건은 값을 후려쳐 가격을 싸게 매길 것이고, 북진본방에서 사려고 하는 물건들은 값을 높게 책정할 것이 분명했다. 또 북진본방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은 쟁여놓고 팔지 않을 수도 있었고, 설사 판다고 해도 청풍도가에서 매겨놓은 높은 가격으로 구입하면 충주나 한양으로 가지고 간다 해도 경쟁력이 없으니 헛장사를 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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