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필주를 따라 처음으로 들른 곳은 베를 짜는 공방이었다. 최풍원이 둘러본 공방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앉아 베를 짜고 있었다. 그들은 베를 짜는 여러 공정들 중에서 한 가지씩만 맡아 일을 했다. 바래기, 삼째기, 삼 삼기, 베메기, 베짜기를 하는 사람들이 각기 제 일만 하고 있었다. 농가에서 가내수공업으로 할 때는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의 일을 해야 했으므로 틈이 생겨 능률을 올리기가 힘들었지만 시전공방에서는 자기가 맡은 일만 하면 되니 예전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의 베를 생산할 수 있었다.

“공방을 보니 어떤가?”

유필주가 최풍원에게 소감을 물었다.

“저렇게 많이 생산되니 베 값이 폭락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집에서 식구들이 짜는 베는 이제 끝났다네!”

이미 한양에서는 공방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이 대부분의 장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니 농가에서 집집마다 부업으로 틈틈이 짜는 베는 가격에서 공방의 베와 애초부터 경쟁이 될 수 없었다. 자연스레 베 값은 떨어질 것이 뻔했고, 농민들 살림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큰일입니다. 그렇잖아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모두들 아우성인데 그나마 시골에서 돈을 만질 수 있는 일이 베 짜는 일인데 모두 저런 공방에 빼앗기고 있으니…….”

최풍원은 앞날이 심히 걱정되었다. 

“베뿐이겠는가?”

베뿐만이 아니었다. 종이를 만드는 공방, 가구를 만드는 공방, 그릇을 굽는 가마, 갓을 만드는 공방, 심지어 짚신을 삼는 공방까지 생겨나고 있는 판이니 시전 공방에서 생산하지 않는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공방에는 장인과 그 밑에 수십 명의 일꾼들이 함께 모여 많은 물건들을 한꺼번에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사일을 하며 틈틈이 만들던 수공업품으로는 대적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했다. 농촌의 수공업은 자연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농촌 살림이 파탄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농촌은 이제 끝났소!”

유필주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농촌에서는 무슨 장사를 해야 할까요?”

최풍원이 답답한 마음에 해결책도 없는 물음을 유필주에게 했다.

“빨리 바꿔야 살지!”

최풍원이 처음 장사를 시작했던 때와 비교하면 농촌도 천지가 개벽할 정도는 아니지만 많이 변화했다. 그래도 아직 농촌 장마당은 예전 장사 풍토가 그런대로 남아있어 이제껏 해오던 방식대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듯싶었다. 이토록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한양의 장사 세력이 여리고 여린 농촌을 그냥 둘 리 없었다. 기가 승하면 넘치는 것이 세상 이치였다. 높은 곳의 것이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순리였다. 한양에서 승하고 넘치면 팔도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결과는 삼척동자와 팔척장신의 싸움이었다. 팔도 농촌 고을로서는 도무지 견뎌낼 수 없는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한 동네 모든 사람들이 짜내던 베를 한양 공방에서는 하루에 생산해내고 있으니 애당초 대거리도 못할 싸움이었다.

농촌이 피폐해지는 것은 비단 한양의 공방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물건 때문만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벌써 수년째 흉년과 전염병이 번갈아 찾아오며 농민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가뭄이 들어 농작물을 타죽이거나, 물난리가 나 논밭의 농작물을 몽땅 휩쓸어갔다. 봄 가뭄도 넘기고, 여름장마도 겨우 피해 나락이 들어차려고 하면 큰바람이 일거나 늦장마가 져 농사를 망쳐버렸다. 가뜩이나 기근에 시달리며 근근히 살아가는 농민들에게 전염병까지 시시때때로 찾아들었다. 한 번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기력 떨어진 사람들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졌다. 남의 집 머슴을 살거나 소작을 부치며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해가는 농민들은 병이 들어도 약 한 첩 쓸 여력이 없었다. 걸리면 앓다가 죽든가 운이 좋아 살든가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농민들의 삶이 극한에 처하자 사람들 심성도 나날이 사물어져 갔다. 굶주림과 병마에 지친 사람들이 막판에 몰리자 이판사판 격으로 행동했다. 어떤 마을에서는 개천가에 풀을 뜯고 있던 남의 소를 잡아먹고, 지주 몰래 들판에 있는 곡식을 베어다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낮에 남에 집에 들어가 주인을 묶어놓고 곡식을 훔쳐가기도 했다. 가난한 농민들이 입성이라고 든든할 리 만무했다. 다른 계절이야 살만 가리면 그저 살 수 있었지만 겨울이 문제였다. 손바닥만한 땅 한 평도 없어 남의 땅을 부쳐 먹고사는 농민들에게 땔감을 해 땔 임야 또한 있을 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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