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막걸리통을 잔뜩 실은 자전거가 마을에 들어선다. 애경사가 있는 것이다. 옛날엔 마을사람들이 돼지잡고 음식 장만하여 손님을 접대했다. 이때 음식상에 막걸리 주전자를 함께 올렸다. 예식장 뷔페식당에서 음식을 날라다 먹는 요즘과 달리 그땐 과방에서 음식을 차려 상에 날라다 주었다.

옛날에는 술이 막걸리밖에 없었다. 소주도 있긴 했지만 거의 막걸리가 주종을 이루었다. 주전자를 들고 사러 가면 단지에서 바가지로 퍼 담아 주었다. 지금은 마트에 가면 많은 종류의 술이 기다리고 있어 취향대로 골라 담아오면 되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꼭 주전자를 가져가야지만 사올 수 있었다. 심지어 마을 점방에 막걸리가 동이 나면 고개 넘어 이웃마을까지 가서 받아와야만했다. 주전자를 들고 고개를 넘어오다 보면 힘들고 갈증 나서 한 모금씩 마시며 돌아왔다.

농촌의 정과 힘은 막걸리에서 나온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농사일을 하다 힘들 때 막걸리를 직접 담가 먹었다. 쌀을 쪄서 멍석에 펼쳐 식힌 뒤 밀기울이 섞인 누룩을 독에 넣고 물을 부어 며칠을 숙성시킨다. 그런 다음 체에 받아내고 지게미는 손으로 뭉개어 물을 넣고 다시 거른다. 이런 과정으로 막걸리를 주조하여 이웃과 새참으로 나누어 먹었다.

시골에 가려면 준비물로 막걸리 몇 병과 안주로 삼겹살을 구입한다. 옛날에는 시골 마을에 점방이 있어 막걸리와 국수 등을 팔았었는데 이제는 마을 인구가 줄어들어 없어졌기 때문이다. 출발할 때 마트에 들려 사 가야한다.

점방이 없어지니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일하다 간식으로 막걸리를 먹고 싶어도 살 데가 없어 먹지를 못한다. 땀 흘리고 집에 돌아와 갈증 해소용으로 막걸리가 생각나지만 읍내까지 가야 하기에 사러가질 못한다고 했다.

아래 밭 할머니는 우리가 갈 때마다 막걸리를 사다드린다. 막걸리를 드리면 받아들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흡족해 하신다. 말로는 왜 사오냐고 하지만 어느덧 손은 막걸리 병을 받아들고 웃고 있다. 당신께서는 줄 것도 없는데 맨날 받아먹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막걸리를 가져가면 혼자 드시는 게 아니라고 했다. 저녁에 회관에서 마을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눠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갈 때마다 꼭 잊지 않고 사다 드린다.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농부들의 곁에서 힘을 북돋아주고 친구가 되어 고난을 함께 해왔다. 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에게 새참이 되어주고 그들의 흥을 북돋아주었다. 항상 곁에서 지켜주고 춤추고 노래하게 해 주었다. 우리 역사를 지켜주고 함께 걸어온 소중한 친구다. 한때 소주 맥주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들었던 막걸리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막걸리에 항암 효과가 있다는 발표가 나오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주전자. 플라스틱 병에 밀려 보기 힘들다. 다시 주전자로 막걸리를 사서 들고 다니는 광경을 볼 수는 없을까 기대해 본다. 역시 막걸리는 주전자서 따라 마셔야 제 맛이 난다. 주전자는 막걸리만 담는 게 아니라 막걸리 맛 같은 인정과 사랑을 담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랑 가득 담긴 막걸리를 싣고 시골 마을로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가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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