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깊어가는 가을단풍이 절정이다. 지난 10월 21일 새벽 잠 설치며 안개 낀 청주역에 모인 세 사람(紋鳳, 海巖, 芝園), 단풍이 지기 전에 가자고 1박2일 여행길에 나섰다. 가는 곳은 강원도 대관령을 넘어 동해안 ‘정동진’을 열차로 가는 유람천리다

철마(鐵馬)는 뿌연 안개 속을 해치며 굉음(轟音)을 내며 달렸다. 차창 넘어 비치는 산과 들만 보아도 고향 가는 길은 언제고 포근한 정(情)이 느껴진다. 충주를 지나 제천역에서 ‘강릉’으로 가는 열차로 환승했다. 객실은 단풍잎처럼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로 가득했다. 찰각 찰각 레일을 밟고 달리는 소리가 그 옛날 밤 열차로 힘겹게 대관령을 넘었던 그때 그 추억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태백(太白) 준령(峻嶺)을 뚫고 힘차게 달리는 차창 너머로 높은 산줄기마다 오색찬란한 단풍! 타오르는 불꽃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스치고 지나간다. 집에서 천정과 벽만 바라보던 일상에서 눈앞에 닥치는 천혜의 아름다운 절경(絶景)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 아름다운 강산이여! 승객들 모두의 가슴에도 환희의 물결이 넘쳤으리라.

깊은 계곡마다 맑은 물줄기 흐르고, 올망졸망 작은 밭에 가을 농작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마을 사람들의 정 깊은 모습이 인생의 아름다운 삶의 포근한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 열차는 태백역에 이르자 수 많은 등산객을 쏟아놓고 숨 가쁘게 계속 달렸다. 터널을 빠져나와 눈 앞에 닥치는 지평선!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이 다가선다.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모래밭에 밀려드는 파도만이 우리를 부른다.

바다에 가장 가깝다는 정동진역에서 내렸다. 향기호텔이 어디인가. 택시를 타고 가보니 푸른 산 밑 바다 가에 우뚝 선 아름다운 호텔이다.

오후는 시간과 시계를 주제로 모래시계 공원에서 전시품과 진귀한 시계의 역사를 한눈에 담아갈 수 있었다. 저녁은 바다 횟집에서 백세 주 마시며 100세까지 살자고 다짐하던 그날 밤! 친구야 어찌 그때를 잊을 수가 있을까. 모처럼 한방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피곤한 하루 밤을 따뜻한 잠자리에 묻었다.

아침 5시 문봉(紋鳳)은 사진작가로 늘 우리 여행을 치밀한 계획을 세워 이끌었다. 오늘도 카메라 메고 동해에 솟아오르는 ‘해’를 찍겠다고 해암(海巖)과 같이 나갔다. 구름에 쌓인 해를 찍었다고, 안타까워 하지만 그래도 구름 속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은 장엄하고 위대한 생명의 원천이다.

예나 지금이나 창과 방패의 싸움은 변함이 없다. 땅굴까지 파가며 호시탐탐 창을 든 쪽은 북한이요. 방패 들고 막는 쪽은 남한이다. 겉으로는 평화를 선전하면서 뒤로는 땅굴 을 파고, 바다 속으로 침투하는 북한이다. 지금도 비핵화, 평화를 말하지만 믿어 지지 않는 이유가 기만전술 때문인 것을 똑똑히 기억하리라. 택시로 강릉으로 달려가 청주행 직통버스를 탔다. 대관령을 넘으면서 산야에 펼쳐진 오색 단풍을 바라보는 눈이 황홀하기만 했다. 3시간을 달려 청주에 도착하고 우거지 해장국집에서 1박2일 짧은 여행이 막을 내렸다, 여름날 그토록 무성했던 나뭇잎이 곱게 물들고 이별을 고하듯 토해내는 찬란한 단풍잎처럼 가을이 저물어 간다. 우리 인생도 되돌릴 수 없는 老境의 서글픈 가을유람 천리 길에 황혼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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