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건 더 있는가? 이런 물건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인사들이 숫할걸세!”

함길중 대고가 천삼이 더 있으면 팔아주겠다며 말했다.

그러나 최풍원은 일단 천삼 두 근이 더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 밤 삼개나루 마덕출 여각주인에게 천삼을 넘겨주기로 약조를 했기 때문이었다. 마덕출 여각주인은 대전리에서 가지고 온 천삼 두 근 값으로 쌀 이백 석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대전리 천삼 주인 언구네 집안은 벌써 선조 때부터 인삼재배를 해온 터라 백삼·홍삼·곡삼·정과 들을 만드는 비법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천삼을 만드는 비법은 언구네 집안이 최고였다. 언구네 천삼은 청풍관아를 통해 암암리에 한양의 고관대작들에게 뇌물로 바쳐지고 있었다. 최풍원이 함길중 대고에게 천삼이 더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마덕출 여각주인과의 약조보다도 거기에 더 큰 이유가 있었다. 함길중 대고는 대궐에 필요한 물산들을 공납하며 많은 고관대작들과 연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함 대고에게 천삼을 넘겼다가 만의 하나 천삼이 청풍관아로부터 뇌물을 받아먹은 관료에게 들어가게 된다면 언구가 치도곤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언구가 짓는 인삼 농사는 청풍관아로부터 돈을 받아 재배하고 있는 삼이었다. 더구나 조선에서는 개인이 인삼을 사사로이 매매할 수 없었다. 인삼은 전량 관아에 공납해야하는 특별한 물품이었다. 그런데 시전상인인 함길중 대고에게 들어간 천삼이 그 물건을 알아보는 관료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밀거래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 물건을 빼돌릴 사람은 언구밖에 없으니 언구가 큰코를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큰코를 다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백번 관아에 끌려가 절단이 날 수도 있었다. 언구가 최풍원에게 천삼을 맡기며 신신당부한 것도 그 점이었다. 최풍원은 고관대작들과는 좀처럼 손닿기 먼 사상인에게 천삼을 넘길 생각이었다. 사상인들의 거래는 워낙에 복잡해서 물건들의 거래선을 알아내기도 힘들었고 관수품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은밀하게 밀거래를 했다. 그러니 천삼을 넘겨도 뒤탈 없이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함 대주 어른, 천삼은 이게 전부고, 호의를 베풀어준 인사로 드리는 것이니 정표로 그냥 받아두시지요.”

최풍원이 함길중 대고에게 천삼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물건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 것인데 참으로 아쉽구만!”

함길중 대고가 못내 아쉬워했다.

“혹여 앞으로 그런 물건을 구하면 그리 하겠습니다요!”

“최 대주, 앞으로 청풍에서 나는 특산품은 직접 거래를 하고 싶은데 어떠시겠는가?”

함길중 대고가 최풍원에게 직거래를 원했다.

“글쎄올습니다. 아직은 제가 그럴만한 여력이 되지 못해서…….”

최풍원으로서는 함길중과 같은 한양의 큰 장사꾼과 직거래를 한다며 그것은 양반이 어디 고을 원님 자리 하난 얻는 것보다 더한 횡재였다. 그런데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윤왕구 객주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의리 때문이기도 했고,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치 볼 것 뭐 있겠는가. 장사가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남기고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당연히 그리로 가야지.”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의 속내를 알아채고 대신 대답을 했다.

“객주 어른, 고맙습니다!”

“역시 윤 객주는 시골에서 객주나 할 인물이 아닙니다, 그려!”

함길중 대고가 윤왕구 객주를 추켜올렸다.

“당연한 일 아닌가? 소갈머리 없는 것들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고 하는 것이지, 하나라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잘되면 좋지 뭘 그러나? 이웃이 하나라도 자꾸 잘돼야 고물이라도 떨어지지, 못 살아가지고 자꾸 우리 집에 뭐를 얻으러 오거나 손을 벌리면 뭐가 좋겠는가? 그러니 하나라도 자꾸 잘돼야 좋지 않겠는가? 함 대고는 내가 찾아올 때마다 죽는 소리를 하고 뭐를 달라고 해도 좋겠는가?”

윤왕구 객주가 함길중 대고에게 동냥하는 시늉을 했다

“최 대주, 윤 객주도 좋다하니 앞으로는 내가 북진나루로 배를 직접 올려보내겠네! 그러니 이번처럼 좋은 물건만 해서 내게 보내주게!”

“최 대주, 우리 충주상전에 더 좋은 물건을 주고, 그 질로 함 대고를 주게!”

“두 어른께 뭐라 말씀드려야할지…….”

최풍원이 진심으로 두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했다.(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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