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모두 여기 최 대주네 물건일세!”

“젊은 양반이 손끝이 맵구만. 물건도 하나같이 좋지만 얼마나 보기 좋게 담았는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겠드만! 그런 걸 어디서 배우셨는가?”

최풍원의 물건을 본 함길중 대고의 칭찬이 늘어졌다.

“대궐로 들어가는 물건이라 정성을 다했을 뿐입니다요.”

“이제껏 장사를 해왔지만 이번 물건처럼 말끔하게 빠진 건 처음일세. 앞으로도 우리 잘해 보세!”

함길중 대고가 최풍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 대고가 퍽 마음에 들었나보이!”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드니 금도 더 쳐줌세. 참나물·취나물·고사리 해서 건나물이 각 스무 관, 엄나무·오가피순 해서 각 열 관, 원추리·씀바귀·달래·돌나물해서 생나물이 각 닷 관씩 산나물만 모두 일백관이고, 황기가 이백 근, 꿩이 백 수, 황쏘가리가 모두 쉰 마리가 입고되었구만.”

함길중 대고가 물목이 적힌 종이를 보며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식전에 배에서 내린 물건이 벌써 탁자 위에 올라와 있으니 참으로 대단허이! 그나저나 금을 잘 좀 쳐주게!”

윤 객주가 함 대고에게 부탁을 했다.

“물건은 모두 최상품인 것을 확인했으니 최고로 쳐주겠네! 건나물 육십 관에 구십 냥, 생나물 사십 관에 스무 냥, 황기 이백 근에 일 백 냥, 꿩 백 수에 열닷 냥, 황쏘가리 쉰 마리에 쉰 냥 해서 전부 이백일흔 닷 냥이네. 그런데 정말 좋은 물건만 가져왔으니 삼백 냥을 채워 줌세!”

“삼백 냥이라고요!”

최풍원은 깜짝 놀랐다.

“왜 금이 적어 그러는가?”

“그게 아니라…….”

삼백 냥은 최풍원이 장사를 하며 처음으로 받아보는 큰돈이었다. 물론 초봄에 시작하여 근 달포 동안 각 임방과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고생한 대가를 생각하면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먹을 게 없어 배를 주리는 춘궁기에 나물을 뜯어 허기를 면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청풍에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나물을 사주는 거래처가 생긴 것은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최풍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북진본방의 상권도 넓히고 청풍의 물산들을 본격적으로 한양에 팔아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했는가?”

갑자기 함길중 대고가 뜬금없이 물었다.

“무슨?”

최풍원이 영문을 몰라 함 대고의 입만 살폈다.

“황쏘가리 말일세! 나도 이제껏 죽은 놈은 봤지만 그놈을 살려 가지고 온 것은 처음이네. 대궐 수라간에서도 모두들 감탄을 했다는 게야! 덕분에 함 대고는 못하는 게 없다며 내 위신이 한껏 올라갔다네! 산채도 약재도 하나같이 흠잡을 데가 없고, 게다가 황쏘가리를 산채로 받았으니 다른 물건은 볼 것도 없다며 무사통과를 했다네!”

함길중 대고는 대궐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다. 함 대고가 기분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단지 몇몇 물건들을 인정받았다는 사실보다는 몇 개의 인정받은 물건들로 인해 미칠 효과가 무척 컸기 때문이었다. 수천 명이 사는 대궐 안에서 하루하루 소비되는 물건 양만해도 엄청났다. 그것을 일 년으로 치면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 그중에 몇 가지만 대궐에 물건을 공납해도 떵떵거리며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최풍원의 공납품 덕분에 함 대고 상전이 한 수 올라가게 됨은 물론 그로인해 다른 물산들까지도 공납할 수 있는 호기회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대궐에 공납하는 상전이라고 소문이 나거나 대궐에 공납한 물건이라고 하면 여는 물건보다 값을 배는 받을 수 있었으니 양손에 떡을 쥔 셈이었다.

“함 대고 어른! 제 물품 대금은 쌀로 주실 수 있으신가요?”

최풍원이 함길중 대고에게 이번 공납품 값을 쌀로 달라고 했다.

경상도에서 온 천 씨 형제들과 영월 맏밭나루 성두봉도 물산 대금을 곡물로 받기를 원했다. 팔도 어느 고을이든 춘궁기에 배고프지 않은 백성들이 없겠지만, 특히 남한강 최상류 내륙 깊숙한 산간이나 죽령 너머 경상도에는 기근이 몹시 심한 듯 했다.

“그건 최 대주가 원하는 대로 해줌세! 돈으로 달라면 돈으로 주고, 물건으로 달라면 물건으로 주겠네!”

함길중 대고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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