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꾼이 두 사람에게 자신이 상전을 가지고 장사를 했던 사람이고 허풍을 떨었던 것은 더 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죽는 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어렵게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더 그러했다. 고향에서도 살지 못해 떠나온 알거지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백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한양에 올라와 손을 벌릴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정말로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죽을 지경이 되어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죽는 소리를 하면 눈앞에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입으로는 위로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멀리 할 생각부터 했다. 혹시라도 자기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그리고는 깔보고, 업신여기는 것이 타관에서 만난 사람들 속성이었다. 그러니 죽을 지경이 되어도 있는 척해야 하고 허세를 부려야 했다. 타관에서는 죽어도 가진 척해야 있는 친구라도 남아있는 법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있던 사람도 떠나갔다.

“주모, 여기 안주와 술을 넉넉히 내오시오!”

윤왕구 객주가 주모를 불러 푸짐하게 음식을 시켰다.

“왜 그러슈! 나도 그만한 돈은 있는 사람이오!”

여리꾼이 허세를 부렸다.

“그냥 사고 싶어 그러하는 것이니 마음 쓰지 마시오!”

윤왕구 객주가 여리꾼을 다독였다.

“난 황해도 연천 사람이오!”

여리꾼이 묻지도 않은 자기 고향을 알려주었다.

“거기는 들도 넓고, 바다도 있어 곡물도 해산물도 풍족한 곳이 아니오? 그런 좋은 고향을 두고 한양에는 뭣 하러 올라왔소?”

“들판에 오곡이 넘쳐나면 뭐하고, 바다에 고기가 득시글하면 먼 소용이유. 거시기 두 쪽 밖에 없는 놈은 어딜 가나 종살이지.”

“그래도 고향이 좋지 않소?”

“속내야 얘기할 것도 없고, 오죽하면 떠났겠슈?”

“한양에 올라온 지는 얼마나 됐소이까?”

“삼 년이오. 그래도 처음 올라와서는 그런대로 고향보다는 이래저래 좋았는데, 작년 난리 나는 바람에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말았슈!”

“쌀 됫박장사를 했다면서 난리하고는 무슨 상관이오?”

“있고말고요. 고래싸움에 새우 꼴 난거지유.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 여기를 오니 뭐 할 일이 있겠슈. 그래도 싸농사를 지었던 터라 쌀은 볼 줄 알아 쌀을 조금씩 사다 지고다니며 행상을 했지유. 장사도 솔찬이 되고 물량도 늘어나 먹고 살만해지자 고향 떠나오기를 잘했다 타관생활에 막 재미가 붙을 판인데 전주가 쌀을 그냥 대줄 수는 없으니 밑천을 대놓고 쌀을 가져가라는 거유.”

“그래 어떻게 했소?”

“장사가 잘 되는데, 쌀을 안 준다니 어쩌유. 타관에서 급할 때 쓰려고 고향 뜰 때 이것저것 처분해 가져왔던 돈을 전주에게 줬지유. 내원 참! 재수 없는 년은 봉놋방에 누워도 고자 옆에 눕고, 시집을 가도 가는 날 아침에 등창이 난다더니 내가 그 꼴을 당했지 뭐유. 돈을 주고 며칠도 안돼서 그 사단이 났지 뭐겠슈!”

여리꾼 표정에 아쉬움이 그득했다.

“밑천은 돌려받았소?”

“돌려받기는커녕 외려 덩택이만 썼다우!”

“내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덩택이만 썼다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최풍원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세상일이 그렇게 원칙대로만 이뤄진다면 싸움은 왜 하고, 송사는 왜 벌어지겠는가? 그래, 어떻게 덩택이를 썼소이까?”

“난리가 나고는 싸전도 불타고, 전주도 붙들려가고 했으니, 누울 곳을 보고 발을 뻗으라고 나도 돈을 달라 할 수 있었겠슈. 다행히 내가 거래를 하던 하미전 주인은 크게 죄지은 것이 없어 곧 풀려나와 장사를 시작했다오. 그래서 나도 장사를 다시 시작하려하니 쌀을 대달라고 했지 않겠슈. 그랬더니 다시 장사를 하려면 밑천을 다시 내라는 거유. 하도 황당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지난번 받은 돈은 타버린 상전에서 받은 것이고 불타버려 이제 새로 장사를 하니 쌀을 가져가려면 다시 돈을 내라는 거유. 그게 말이유, 똥이유. 그래도 꾹꾹 참고 장사를 할 수 있게 쌀을 대달라고 했지유. 끝내 안 된다는 거유. 그래서 그 돈은 우리 식구들 목숨줄이다. 그런 장사를 안 할테니 밑천으로 맡겼던 돈을 되돌려달라고 했더니 그건 타버린 옛날 가게여서 자신도 손해를 봤으니 줄 수 없다고 입도 떼지 못하게 하는거유.”

여리꾼은 말을 하면서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숨찬 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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