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사로 따라갔던 관원들이 하는 말인데, 우리 같은 천한 것들이 공부 많이 한 관원들 말을 믿지 않으면 누구 말을 믿는단 말입니까요?” 

“관원은 무슨? 공무보다도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장사치들을!”

사내는 사은사 관원들을 장사치라고 질타했다.

“지는 그런 건 모르고 이번 겨울에 동지사로 다며 온 관원들이 들고 들어온 대국 비단이라 아직 따끈따끈합니다요!”

여리꾼이 볼을 쓰다듬듯 비단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대국에서 온 비단이라는 말에 사내가 선전 밖에 서있는 양반을 돌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양반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더 흥정을 해보라는 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스물 닷 냥은 너무 과하니 뒤에 붙은 꼬리는 잘라내게!”

“조선 비단이라면야 열 냥도 빼드리겄지만, 이건 대국비단 중에서도 젤루 치는 최고 비단이라 그렇게 팔면 밑집니다요.”

여리꾼이 죽는 소리를 했다.

“그렇다면 흥정은 끝난거고, 다른 집으로 가볼 수밖에…….”

사내가 말꼬리를 흐리며 상전 밖으로 나가려는 시늉을 했다.

“아따, 성질도 급하시기는. 좀 기다려 보시요!”

여리꾼이 황급하게 사내를 잡았다. 그러더니 선전 주인과 알아들을 수도 없는 이상한 말을 나누더니 다시 사내에게 말했다.

“관원에게 들여온 값이 스물한 냥이랍니다요. 우리도 구전이라도 좀 먹어야 세도 내고 식솔들도 먹이지 않겠습니까요. 그러니 스물두 냥만 주셔요!”

“스물한 냥!”

“그러면 본전인데…….”

여리꾼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정 안되겠는가? 그럼 다른 데로 가고…….”

사내가 또 나가려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도 미련이 있는 듯 매정하게 돌아서지는 않았다.

“알겄습니다요! 어르신이 하 그러시니 본전에 드리는 겁니다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샀다 절대 말하지 마시오. 땅 파서 장사하느냐고 우리 상전이 욕먹습니다요. 그러면 이 바닥에서 장사도 못해먹습니다요!”

여리꾼이 생색을 내는 것인지, 죽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여리꾼과 흥정을 끝낸 사내가 선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양반에게로 가서 말했다.

“주인 어르신, 스무 두 냥이랍니다.”

여리꾼은 분명 스물한 냥이라고 했는데, 사내는 자기 주인에게 스물두 냥이라고 말했다. 양반이 전대를 사내에게 넘겨주었다. 사내가 엽전 꾸러미를 받아 돈을 헤아리자 양반은 그 모습을 슬쩍 살피며 짐짓 다른 곳을 보는 체 했다. 선전 안으로 들어온 사내가 엽전꾸러미를 여리꾼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더니 한 관 짜리 꾸러미 두 개와 한 냥 짜리 작은 꾸러미 하나를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남은 한 냥 짜리 꾸러미를 자기 바지춤에 재빨리 넣었다. 사내에게 돈을 건네받은 여리꾼도 선전 주인에게 스무 냥 두 관을 넘겨주고 한 냥 짜리 꾸러미를 챙겼다.

“객주어른, 저들이 하는 일이 신기하지만 뭘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언 듯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요.”

최풍원은 한양에 와서 여리꾼을 처음 보기도 했지만, 여리꾼이 하는 일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이 말품만 팔아 금방 한 냥을 버는 여리꾼의 재주가 신기하기만 했다. 저런 재주만 있다면 농토가 없어도 먹고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땅을 얻어 부치기 위해 부잣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 필요도 없고, 땅주인의 앰하고 모진 소리에도 찍소리 못하고 서서 허리를 굽실거릴 필요도 없었다. 양반과 함께 선전에 온 사내의 행동도 이상했다.

“사람이 들끓고, 상전이 즐비한 한양이니까 가능한 일이라네. 장사가 뭐 별거던가. 서로 필요한 것 해주고 댓가를 받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만 많으면 무슨 일은 없겠는가? 그렇게 서로 뜯어먹으며 사는 거지.”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에게 여리꾼 설명을 해주었다.

여리꾼은 선전 주인이 남기는 이익금에 자기의 이득을 더 붙여 손님에게 팔아야 자신의 몫이 생기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리꾼이 자기 몫을 챙기려면 주인이 팔려는 가격을 먼저 알아내서 그보다 비싼 값을 손님에게 불러야 했다. 그때 손님이 여리꾼과 주인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알아들으면 곤란하므로 두 사람은 서로 약속된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것을 변어라 했다. 여리꾼과 선전 주인이 서로 나눴던 뜻 모를 말은 서로 변어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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