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는 구하지 못할 물건이 없었고, 그래서 광통교 주변에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물건들을 사고 팔았다. 광통교를 건너 상전거리를 지나자 종루 쪽으로 운종가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운종가는 조선 팔도에서 가장 번듯하고 화려한 전들이 차려진 육주비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운종가는 흥인지문과 돈의문 사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로에 있었다. 얽히고설켜 어수선한 삼개장이나 칠패장처럼 난장으로 시작해 우후죽순처럼 어지럽게 생긴 칠패장과는 달리 반듯한 길 양편으로 반듯하게 정돈된 운종가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운종가 큰길 양편으로는 나라에서 지은 수천 칸의 쪽 뻗은 줄행랑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운종가 시전은 나라에서 관리하던 곳이었다.

육전거리에 있는 운종가 시전 상가는 목조로 된 건물에 기와를 이은 집으로 길가 쪽으로 난 아래층은 상전으로 사용하고, 상전 뒤쪽은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와 가족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육의전은 한양의 시전 중 규모가 큰 선전·면포전·면주전·내외어물전·지전·저포전 등 여섯 개의 상전을 말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일물일전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농업을 중시하고 유교를 숭상했던 국가로 상업은 천시되었다. 당연히 상업은 발전될 수 없었고, 백성들은 대부분의 필요한 물건들을 자급자족하거나 물물교환으로 충당했다. 개국 초기 육주비전을 만든 것은 백성들을 위함이 아니라 대궐에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받기 위해서였다.

한양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세워진 도성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며 궁궐과 종묘와 사직을 건설하고 궐을 보호하는 담을 둘러치고 궐 밖에 행정·사법을 담당하는 관청을 궁궐 정면 대로인 육조거리에 지었다. 그리고 나라 경제를 담당하는 시전을 동서로 연결하여 지었다. 그리고 궁궐과 도심을 방어하기 위해 도성을 쌓았다. 도성 안에 처음 운종가가 지어졌을 때는 육조거리에서 종루가 있는 곳까지였으나 점차 상업이 발달하며 광통교 부근가지는 물론 종루 동쪽까지 커진 것이었다.

나라에서 관리하던 시전의 본래 목적은 왕실과 관청에서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는 책무였다. 그 물건들의 종류가 비단·무명·명주·베·종이·어물 등이었다. 시전 상인들은 나라에 필요한 물품을 대주는 대신 금난전권이라는 전매 특권을 이용하여 독점으로 장사를 하는 어용상인들이었다. 개국을 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시전상인들은 이러한 특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난전을 금지했다. 따라서 개인이 사사로이 물건을 팔고 살 수 없었고, 장사는 활성화될 수 없었다. 그러다 양난 이후 먹고살기 힘들어진 팔도 유민들이 한양으로 모여 들며 물물교환이 늘어나자 난전이 생겨나고, 각 고장의 특산물을 쌀로 바치라는 대동법이 실시되자 상업이 급속도로 발달하게 됐다. 상업이 발전하며 도성 안팎으로 난장들이 생겨나고 장사꾼들의 수가 급격하게 불어나자 시전상인들의 특권도 사라지고 이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취급하던 물목 또한 예전처럼 지켜지지 않았다. 어물전이라 해서 어물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었고, 선전이라 해서 비단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물목을 넘나들며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이면 시전의 모든 상인들이 어떤 물건이든 팔고 샀다.

육전거리로 들어서자 최풍원은 온갖 휘황한 물산들 때문에 한 군데 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각 전마다 화려하고 진귀한 물산들이 종류 별로 그득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 물건들에서는 품격과 고급스러움이 풍겨왔다.

육의전 중에서도 가장 거액의 자본을 필요로 하는 선전에는 공단·대단·사단·궁초·생초·설한초·운문대단·일광단·가게추·옹문갑사·상사단·통해주·장원주·포도대단·조개비단·금선단·설사·뱃사·호로단·만수단·우단·광월사·아롱단·팔양주·쌍문초·흑저사·남추라·자지상직·거문궁초 등 생전 처음 보는 비단들이 넘쳐났고, 단진목·해남목·고양목·강나이·상고목·군포목·공물목·무녀포·천은·정은·서양목·서양주를 파는 면포전, 명주를 취급하는 면주전, 백지·장지·대호지·설화지·죽청지·상화지·화문지·초도지·상소지·분당지·궁전지·시축지·능화지를 취급하는 지전, 북어·관목·꼴뚜기·민어·석어·통대구·광어·문어·가오리·전복·해삼·가자미·곤포·미역·다시마·파래·우뭇가사리를 취급하는 내·외 어물전, 농포·세포·중산포·함흥오승포·안동포·계추리·해남포·왜포·당포·생계추리·문포·조포·영춘포·길주명천을 취급하는 저포전들이 질서정연하게 육전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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