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화천의 곡운구곡과 화음동정사지
[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화천의 곡운구곡과 화음동정사지
  • 충청매일
  • 승인 2018.09.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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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대 경영학과

지난주 강원도 화천지역 문화탐방을 다녀왔다. 화천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유적지가 곡운구곡과 화음동정사지였다. 곡운구곡은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척화파로 유명한 김상헌(1570~1652)의 손자인 평강 현감 김수증(1624~1701)이 47세에 정계에서 물러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잠시 은거했던 화천 용담리를 찾아 집을 짓고 가족들을 데려와 은둔했던 곳이다. 화음동정사지는 곡운 김수증의 스승 우암 송시열의 화양구곡의 화양동과 음양을 맞추어 화음동이라 이름 하고 화음동정사지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팔경, 구곡이라고 이름 하였다. 팔경은 고려중기 중국의 송나라 시대 소상팔경에서 유래됐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찾아 이름 없는 산수에서 자연미를 발견하고 자부심을 부여해 각 지방마다 팔경을 탄생시켰다. 팔경은 관동팔경, 단양팔경이 그 시작이었는데 지역마다 으뜸 8곳을 선정해 현재는 전국에 113곳 904경이나 된다.

구곡은 주자(1130~1200)가 은거한 무이구곡처럼 조선선비들이 이상향을 꿈꾸었던 곳이다. 조선의 구곡문화는 주자가 무이산에 은거하면서 무이구곡을 설정하고 무이구곡가를 지은 것에서 비롯된다. 구곡의 구(九)는 동양에서 양의 기운이 충만한 완전한 수이고, 가장 큰 수로 최고의 수로 여긴다. 조선은 16세기에 이르러 성리학이 지배사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퇴계 이황(1501~1570)의 도산구곡, 율곡 이이(1536~1584)의 석담구곡, 우암 송시열(1607~1689)의 화양구곡, 곡운 김수증(1624~1701)의 곡운구곡 등 전국에 150여 곳이나 된다. 구곡은 자연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당시를 살았던 선비들의 사상과 역사가 남아있다.

‘세상 멀리 이 경지 마음 닦기 좋으니 저문 나이 기쁨은 산과 물에 있구나’, ‘큰 산이 그 바깥을 두르고 작은 산이 그 안에 뒤섞여 사면을 둥글게 감싸 안은 것이 별세계를 열어놓고 있다.’

산수가 좋고 풍수가 좋은 곡운구곡을 1689년에 지은 곡운기는 이렇게 기록했다.

김수증은 아홉 계곡의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봄철에 바위마다 꽃이 만발하는 계곡 제1곡 방화계(傍花溪), 맑고 깊은 물이 옥색처럼 푸른 골짜기 제2곡 청옥협(靑玉峽), 신녀의 협곡 제3곡 신녀협(神女峽), 흰 구름 같은 연못 제4곡 백운담(白雲潭), 옥이 부서지는 듯한 여울 제5곡 명옥뢰(鳴玉瀨), 와룡의 못 제6곡 와룡담(臥龍潭), 밝은 달의 계곡 제7곡 명월계(明月溪), 의지를 기리는 깊은 물 제8곡 융의연(隆義淵), 층층히 싸인 바위 제9곡 첩석대(疊石臺) 등이다.

그리고 평양출신 조세걸 화가를 불러 8km의 구불구불한 아홉 구비 계곡을 열 폭 비단 위에 그려 후세에 남겼다. 그리고 자신과 두 아들, 다섯 조카와 외손 등 아홉 사람이 곡운마다 칠언절구의 시를 지어 곡운구곡도를 완성했다.

곡운구곡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그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도로가 나고 흔적이 많이 훼손 되었지만 기록과 그림이 있으니 4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할 수가 있다. 그러나 곡운구곡과 화음동정사지는 펜스가 쳐지고 철책 담장에 잠겨 있어 접근하기 어렵다.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이 부진하다. 빨리 복원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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