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주 어른께서는 제가 뭔 한 일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최풍원이 손사래를 쳤다.

“나랏님도 못하고, 고을원도 못하는 일을 자네가 하고 있지 않은가?”

“최 대주가 뭘 했단 말인가?”

마 선주가 윤왕구 객주의 말이 무슨 말인가 궁금해 했다.

“최 대주가 지난 초봄에 사비로 굶주리는 청풍 일대 고을민들에게 곡물을 풀어 허기를 메워주고, 이번에는 일거리도 없는 사람들을 동원해 공납품을 마련하고 그 댓가로 임금을 지불한다니 어찌 대단하지 않은가?”

“듣고 보니 대단한 사람일세! 장사꾼이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네가 임금이나 고을원보다 낫네!”

“저는 한 일이 없고, 모든 게 객주어른께서 돌보아주신 덕분입니다요!”

최풍원이 두 사람 밑에서 한껏 몸을 낮추었다.

어느덧 배는 팔당·덕소를 지나 양주 땅을 지나고 있었다.

“저기 양주가 임꺽정이 난 동네라네!”

마 선주가 뱃머리 오른쪽을 가리켰다.

“백정 출신, 도둑 말이지?”

“저기가 거기란 말이지요?”

이야기로만 듣던 의적 임거정이 태어난 곳을 직접 보게 된 최풍원은 신기하기만 했다. 어려서부터 숩시 들어왔던 임거정 이야기를 최풍원은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임거정이 실제 있었던 인물이고, 태어난 마을이 양주고, 지금 그곳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요샌, 그런 도둑도 나오지 않는구먼!”

“그렇다고 지금 세상이 그때보다 살기 좋아졌다고 할 수도 없는데.”

“살기 좋아지기는, 더 지랄 같은 세상이 되었다고 봐야지! 꺽정이가 다시 나와 백성들 피 빨아 먹는 관리나 양반 토호들 혼구멍을 내야하는데…….”

 마 선주의 말처럼 지금이 임거정이 살았던 몇 백 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찌 보면 그 시절보다도 나라 세금은 더 과중해졌고, 관리들의 착취는 더 교묘해졌으니 백성들의 생활은 훨씬 더 피폐해졌다. 세도가 재상들은 염치나 체면도 없이 제멋대로 욕심을 채우고, 지방 수령들은 매관매직에 바친 돈을 충당하기 위해 고을 백성들의 주리를 틀어 고혈을 짜내니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나라 임금은 백성들의 고충을 알지 못했다. 왕실 아녀자의 치마폭에 휩싸이고, 외척들에게 둘러싸여 귀머거리가 되고 소경이 되었다. 하기야 눈귀가 뚫렸다 해도 그들 등쌀에 왕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죽을 지경이 되어도 어디에다 대고 고달픔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세상이 편해야 장사도 잘되고 맘 편히 장사도 할 수 있을 텐데, 시절이 하 수상하니 사람들이 마캉 다 겅중에 떠서 사는구만.”

“시골로는 성한 마을이 별반 없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구먼.”

“그게 다 임금이 임금 노릇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구만!”

“그러니 어린 임금이 뭘 할 수 있겠어?”

임금이 어려 친정을 하지 못하고 수렴청정을 받고 있으니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았다. 왕권이 약하니 나라 기강이 문란해지고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도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지방 관리들은 부패를 일삼게 되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고을 백성들이 감내해야만 했다. 지방 관리와 아전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고을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땅을 개간하고, 전답을 약탈하여 사유지를 넓혀나갔다.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그마저도 할 수 없는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도망쳐 도적이 되거나 유랑민이 되어 떠돌았다. 이 모든 원인은 조선 사회가 부패해졌기 백성들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니라 왕실과 관료, 지방 관리들과 양반과 토호들의 부패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두 사람이 하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최풍원은 장사를 하며 둘러보았던 여러 마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흉년이 들이 들어 피농이 되었거나 지주들의 과중한 소작료가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히 고을 원이나 아전들의 착취만 문제가 아니었다. 근본적인 것은 그 위의 구조적인 문제였다. 낙향한 양반에게 당하고 있는 월악산 구레골 사람들, 관아 아전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 문수봉 아래 도기 사람들, 청풍도가 장사꾼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도기사람들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최풍원은 이 모든 것이 하늘이 날씨를 잘못해서, 개중에 못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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