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객주 그 소식은 들었는가?”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던 경강선이 춘천에서 내려오는 북한강과 만나는 두물머리에 이르자 강이 바다처럼 넓어졌다. 배가 호수처럼 잔잔한 물길로 접어들자 마 선주가 키를 뱃사람에게 넘기며 덕판에 앉아있던 윤왕구 객주에게 말했다.

“무슨?”

“홍주에서 배로 물건을 실어 나르던 조졸 김 가란 자가 운반하던 곡식을 몰래 빼내 팔아먹다 걸려 목이 저자거리에 내걸리고, 삼개 서강 연안 와우산 기슭에 있는 광흥창에서는 최 가란 관속이 관원들 녹봉 줄 창곡을 훔쳤다가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다는구만!”

“옛날에는 도적놈들이나 도둑질을 했는데, 요새는 멀쩡한 사람들도 여사로 도둑질하니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는지.”

“인종들이 점점 사물어져 가서 그러는 걸 세상 탓은 왜 하는가?”

“사람들이 그러는 게 세상이 어수선하니 정신을 못 차리고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기도 하겠구만.”

마 선주도 윤왕구 객주의 말에 동의했다.

윤왕구 객주 말처럼 수 년 사이에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어린 왕의 즉위 후에 그러한 사정은 더욱 심해졌다. 코흘리개 왕을 보필한다며 시작된 세도가들의 전횡으로 오백년 왕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왕의 나라에서 왕의 위신이 떨어졌으니 아무나 힘 있는 권세가가 왕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라꼴은 말이 아니었다. 권력을 쥔 김 씨가 왕이고, 조 씨가 왕이었다. 왕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세도가들의 눈치를 살폈다. 왕의 편에 줄을 서기보다는 세도가 편에 줄을 서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양반들이 출세하는 길은 과거를 통해서였다. 그래서 조선 팔도 유림들은 수십 년씩 서책을 파며 과거시험에 응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세도가들의 눈에 들면 과거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관리로 나갈 수 있었다. 시세에 빠르고 약삭빠른 사람들은 서책을 읽기보다는 권세가들을 찾아다녔다. 권세가 집안은 이런 사람들로 인해 문턱이 닳아버릴 지경이었다. 나라의 곳간은 비고 세도가의 창고에는 온갖 보배로운 물건들이 차고 넘쳤다.

“충청도 목천인가 어디에서는 중 몰락한 양반과 중인들이 공모해서 지금 임금을 몰아내고 새 임금을 안치자며 모반도 일으켰다던데…….”

윤왕구 객주가 충주 자신의 상전으로 물건을 떼러왔던 보부상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망치가 약하면 못이 튄다고 하더니, 왕 몰아내는 것을 고을 원 몰아내는 것보다 쉽게 생각하니 왕 신세가 개 신세가 됐구만!”

마 선주가 윤 객주 이야기를 들으며 기막힌 세상 변화에 혀를 찼다.

임금의 권위가 추락한 것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조선을 지탱하고 있는 신분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양반도 상놈도 없었다. 양반이라 해서 기가  살고 상것이라 해서 기가 죽지도 않았다. 세상에는 잘나고 못난 놈이 없었다. 이번 임금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아무나 왕권을 넘볼 정도로 나라의 권위와 위엄이 땅에 떨어져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자 이제까지 조선을 지탱해오던 나라의 근본인 삼정까지 문란해지며 혼란에 빠졌다. 위고 아래고 도덕 아닌 놈이 없었다. 뭐라도 뜯어먹을 것이 있으면 체면도 염치도 없이 달려들어 제 주머니를 채우기에 바빴다. 게다가 천기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매 해마다 홍수와 장마가 닥쳐 가옥과 농토를 쓸어버렸다. 풍년이 들어도 워낙에 갉아먹는 인쥐들이 많아 먹고살기 힘든 것이 백성들 처지였다. 그런데 수재까지 해마다 겹쳐 일어나니 백성들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조선의 근본인 삼정이 무너지고, 신분제도가 붕괴되고, 수해와 전염병이 창궐하며 백성들의 삶이 곤궁해지자 조선 팔도 곳곳에서 유민들이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었다.

“요즘 도성에도 팔도에서 몰려든 유랑민들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네. 관아에서는 그들을 잡아 각 고을의 경저리들에게 인계를 하지만 그게 무슨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겠는가. 먹고 살 것이 없어 사람 많은 도성에 오면 품이라도 팔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일거리를 줘야지 붙잡아 보낸다고 무슨 소용인가. 갔다가 또 오고 갔다가 또 오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이지.”

마 선주가 요즘 도성 사정을 전해주었다.

“그러게 말일세. 나아질 기미라도 보이면 희망이라도 가질 텐데, 아무것도 없는 백성들은 눈곱만큼도 품을 희망이 없으니 보통 문제가 아닐세 그려. 그런 걸 생각하면 여기 최 대주가 이번에 큰일을 한 셈이지!”

윤왕구 객주가 뱃머리에서 잠자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풍원을 끼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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