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몇 년 전 라오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 일행을 배웅하던 라오스 현지가이드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검색대를 지나 우리가 안   보일 때까지 유리문에 얼굴을 대고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러 번 여행을 다녀봤지만  그동안의 가이드들과는 좀 달랐다.

여행객들의 불편을 덜어 주기 위해 쉼 없이 동분서주 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지고 정이 갔다.

처음 공항에서 그를 만났을 때 우리 일행은 다소 실망을 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가이드가 아닌 마리란 이름을 가진 40대 중반의 아줌마가 우리를 맞이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왜소한 체구, 짧게 자른 머리모양을 한 그는 얼핏 봐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싸바이디”

손을 합장하고 공손히 인사를 한 그녀가 서툰 한국말로 수줍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 후 에야 여자임을 알았다.

현지 가이드의 역할이라야 통역이라든가 입장권 구매등 한국인 가이드 보조 역할 정도였지만 그녀는 여행객들의 사소하고 때론 무리한 부탁도 마다않고 들어주었다.

마리는 매일 아침 출발시간 훨씬 전에 미리 나와 여행객들의 안부를 묻고 불편한 점을 체크하고 관광 중에는 항상 여행객들의 맨 뒷줄에 서서 마치 호위를 하듯 한시도 일행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누가 사진이라도 찍을 기미가 보이면 어느새 달려와 포토 존을 안내하고 셔터를 눌러 주었다. 일행 중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버스를 오르내릴 때는 늘 곁에서 부축을 했다.

반면 한국인 가이드는 사무적인 태도와 말투 그리고 자신의 임무 그 이상은 절대로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 마리와 비교 되었다.

4박6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녀의 따스한 배려와 친절로 유쾌하고 기분 좋은 여행을 할 수가 있어 유럽 어느 곳의 여행보다도 훨씬 기억에 남는 추억이되었다.

여름방학 특강으로 맡은 한국어 수업은 10개국 24명의 학생들이었다.

중국을 비롯해 미국 아프리카 쪽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교실을 가득 메웠다.

사상 유래 없는 폭염으로 더위에 익숙한 나라 학생들일지라도 한국의 습도 높은 여름은 견디기 힘들어했다.

맨 앞자리에 앉은 앳된 얼굴의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특강반은 단기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어느 반보다도 열의가 높다. 그 중에서도 그 남학생의 눈빛은 간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수업의 속도도 매우 빨랐다.

‘마초’ 서부영화에 나옴직한 이름을 가진 중국에서 온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온 것이고 내년에 한국대학에 입학을 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한국어 이외에도 마초가 궁금해 하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이라든가 대학의 정보, 전공과 관련된 것들을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심껏 설명을 해주었다. 또래의 자식을 둔 엄마의 마음이랄까? 열심히 하려고 하는 마초의 노력이 기특하기도 해서였을 것이다.

마초는 한 달 만에 간단한 일상 회화는 물론 발음도 완벽한 수준을 구사 할 수 있게 되었다.

특강수업 마지막 날, 수업이 끝나고 검은색 비닐봉투에 담긴 캔 커피를 조심스럽게 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쭈뼛쭈뼛 하더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90도로 구부려 인사를 했다.

“그동안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18살 어린 학생의 깊게 구부린 인사에서는 진심이 느껴졌고 나도 서운하고 고마운 마음에 두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내년에 대학생이 돼서 꼭 다시 오라며 배웅을 했다.

나와 인연이 되어 함께 수업을 하는 학생들은 일 년에 50~60명 정도가 된다. 물론 그 학생들이 모두가 마초처럼 내 기억에 존재하진 않는다.

때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잠시 머물다가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로 하여금 좋고 나쁨 중에서 좋음에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최선을 다 할뿐이다.

현지가이드 덕분에 4일간 머물렀을 뿐인 라오스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따뜻하고 친절한 나라로 머물러있다.

지금쯤 개학해서 학교로 복귀해있을 마초의 기억 속에 한국도 그렇게 기억되기를 욕심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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