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북 하나가 내는 소리에 맞추어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한 사람이 연극을 통째로 한다는 뜻입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외국인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판소리 하는 것을 보면 까무러칠 듯이 놀라곤 합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짓이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보는 장면이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보지만, 사실은 그 평범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단한 모험이 필요합니다. 소리꾼은 피를 토하는 훈련을 해 득음을 해야 하고, 그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줄 줄 아는 귀명창이 있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 판소리입니다.

한 20년 전에 전라도 보성에서 전학 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투리를 쓰지요. 그래서 한 눈에 띄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하는 얘기를 듣다보면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바로 사투리 가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아하! 판소리의 가락이 바로 전라도 사투리에서 나온 것이구나 하고는 직감했습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가락을 좀 더 세게 넣으면 판소리가 될 것 같다는 제 나름대로 개똥철학을 굴려보곤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판소리의 기원은 서사무가 같은 곳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르겠지만, 판소리가 백성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또 전라도의 산물이라면 그 사투리와 연결 지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요즘은 귀명창이 없으니까 소리꾼들이 겁대가리 없이 날뛰는 세상이 됐습니다. 제일 한심한 것이 완창입니다. 판소리가 청중을 버리고 무대 위에서 소리꾼만을 위해 존재하는 양식으로 바뀌었음을 또렷이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젊은 소리꾼들은 미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습니다. 정말 엘피판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명창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전율이 느껴집니다. 그 허스키한 목소리를 아름답다고 감상할 줄 아는 귀명창들이 모두 가셨으니, 입명창만 남아서 제가 진짜로 명창인 줄 알고 삽니다.

89세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죽산 박씨는 평생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신 분인데도 판소리 다섯 마당을 모두 머릿속에 담고 사신 분이셨습니다. 1990년대 중반 비좁은 우리 집에서 1달간 지내다 가셨는데,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LP판 국악 전집을 틀어드렸더니, 하루 종일 다섯 마당을 다 들으셨다고 60이 넘은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제가 퇴근하고 현관문을 들어서니 성창순의 심청가 끝부분이 나오더군요. 심청가가 끝났는데, 성창순이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 할머니 왈, “쟤는 왜 저렇게 많이 빼먹었댜?” 녹음하면서 생략된 부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요즘은 옛날 창극에서나 보던 시도가 다시 판소리에 등장하더군요. 말하자면 등장인물에 따라 역할을 나눠서 부르는 건데, 듣기엔 그럴듯할지 모르겠으나, 판소리 자체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시도여서 옛날의 해묵은 논쟁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소리꾼이 구경꾼 위에 서려고 하면 판이 깨진다는 것입니다. 판소리의 ‘판’이 소리꾼을 위한 판만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이 책은 판소리에 대한 여러 사람의 연구를 한 곳에 모아놓은 책입니다. 판소리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책 중에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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