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네가 백제항공 둘째 딸 주아무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하더니 자는 나를 누가 발로 툭툭 건드려 신경질이 있는 대로 났다. 눈을 떠보니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사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전 같았으면 일어나서 싸대기부터 한 대 내갈기고 말을 했겠지만, 지금은 자숙해야 한다.

“경비원! 경비원! 어디 있어. 이 인간들 누군데 남의 방에 들어오게 내버려 둔 거야?”

“어서 일어나지 않고 뭐 하는 거냐?”

“너희들 누구니?”

“그래도 말을 못 알아들어 여봐라 이 아이를 압송하라.”

“네.”

사내 뒤에 서 있던 젊은이 둘이서 내 겨드랑이를 끼고 일으켜 세웠다. 나는 일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소용없었다.

“뭐. 압송?”

“…….”

“그러면 검찰?”

“…….”

“안 돼. 아무리 검찰이라도 그렇지 우리나라에는 법이 존재하고 있다. 변호사에게 물어보고 가겠다.”

“그럴 것 없다.”

“아니, 가만, 너희들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숙녀에게 계속 반말이고 자는 사람 깨워서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이냐. 나에게도 인권이란 게 있단 말이다. 너희들 가만두지 않겠다.”

“…….”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사내들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나를 끌고 가는 사내들의 행동이다. 남자라면 잠자리 날개 같은 속옷만 걸친, 미끈한 나의 몸매를 이리저리 뚫어져라 바라봐야 할 터이지만 전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리 걸어도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더구나 차도 태우지 않고 이렇게 끌고 가는 이유가 대체 뭐냐?”

“…….”

어느덧 발아래로 뭉게구름이 솟구치고 아름다운 비파소리와 아쟁 소리도 들려왔다. 영화에나 나옴 직한 근사한 한옥이 즐비한 어느 고풍스러운 대청마루에 나를 내려놓는다.

“데려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흰 수염이 한 뼘도 넘어 보이는 노인이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천하에 겁 없기로 소문난 나도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곳으로 끌려와야 한단 말인가.

“그래 잘못을 반성하고 있더냐?”

“전혀 뉘우치고 있지 않습니다.”

“미련한 중생 같으니…”

“그래 정녕 너의 잘못을 모른단 말이냐?”

“할아버지는 누구신데 저를 그리 다그치십니까?”

“어허, 말버릇하고는, 어서 머리를 조아리지 못할까?”

옆에 서 있던, 나를 데리고 온 사내가 내 어깨를 짓누르며 하는 말이다. 나는 하마터면 그 위세에 눌려 꿇어앉을 뻔했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너는 어찌하여 그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물 컵을 던지고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했느냐?”

“할아버지, 물 컵 던진 것이 뭐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요?”

“그럼 그게 아무런 문제도 없단 말이냐?”

“네. 사람이 맞은 것도 아니고, 물 좀 옷에 튀었다고 해도 마르면 되잖아요. 금방 말라요.”

“저런, 네 나이 몇인데 그런 철없는 소리를 한단 말이냐?”

“할아버지 숙녀 나이 함부로 물어보는 것 실례라는 것 모르시나요?”

“1983년생 돼지띠 서른여덟 살이구나?”

나는 기가 막혔다. 어떻게 내 나이며 띠까지 정확하게 맞춘단 말인가.

“할아버지 여기 무서워요. 저 갈래요.”

“잘못한 게 많은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저 잘못한 것 없어요. 변호사 불러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

“여기는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이 없으니 변호사가 필요 없다. 그러니 바른대로 말만 하면 되느니라. 너는 어찌하여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야국의 잠자리 비행기회사 이사직을 맡았느냐?”

“그게 뭐 어때서요. 능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하긴 그렇구나. 그런데 이건 능력이 아니고 남의 나라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은 거란다. 그러니 너는 가야국에서 그런 자리를 맡으면 안 되느니라.”

“그럼, 왜 처음에 승인을 해줬어요. 안 해줬으면 안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때 담당부장과 주무관 세 명이 조사를 받고 있다. 그게 모두 너 때문이라는 것을 정녕 모르느냐?”

“그 사람들 그래도 괜찮아요. 내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해주었을 거예요.”

“어찌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왜곡하느냐? 안 되겠다. 여봐라, 이 아이가 저지른 잘못을 보여 주거라.”

내 눈앞에는 수입이 금지된 열대 과일이 가득 담긴 상자를 공항 직원이 끌고 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옆에 서 있던 검은 천의 사내가 다른 버튼을 누르자 이번에는 내가 경비원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모습이 보였다. 그보다도 나를 더욱 긴장시킨 것은 언니 아지가 미국 LA 공항 백제항공 기내에서 사무장의 뺨을 때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래도 너희 잘못을 자백하지 않겠느냐?”

“새로 온 경비원이 조금 멍청해 보여서 정신 차리라고 그랬어요. 그럼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냥 두고 보란 말이에요. 그리고 언니가 한 일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완두콩 회항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월급 주는 사람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에 불과해요.”

“점입가경이구나. 저 철부지를 어찌해야 좋을까?”

“할아버지 나 가르치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그만두는 게 좋을 거예요. 우리 집안 잘 알죠? 우리 삼 남매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컸어요. 오직 엄마 아빠만 보고 자랐다고요.”

“그 부모에 그 자식이구나. 여봐라, 이 아이를 독방에 가두고 요즘 기고만장하는 백제항공 회장 부부를 잡아 오너라.”

“할아버지 뭐야? 우리 아빠 엄마가 누군데 여길 끌려올 것 같아. 괜히 크게 봉변당하기 전에 나 내보내 주는 게 좋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길게 대답을 마친 검은 천의 사내 둘이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감히 누가 우리 부모를 건드린단 말인가. 되레 얻어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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