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이가 구레골에서 바구니를 싣고 왔던 동몽회원의 행방을 알려주었다.

“벌써 시작을 했구먼.”

“이젠, 얼마 안 남었으니 해야지. 그런데 가는 뉘여?”

장석이가 최풍원이 옆에 멀뚱히 서있는 장팔규를 가리키며 물었다.

“팔규구먼유!”

최풍원이 대답할 틈도 없이 튀어나와 장팔규가 제 소개를 했다.

“송계 구레골에서 날 따라왔구먼.”

최풍원이 장팔규를 데리고 오게 된 자초지종을 장석이에게 말했다.

“몇살이여?”

“열셋이유.”

“아직은 어린데, 서운하겠구먼!”

장석이가 장팔규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형이 이것저것 일을 좀 시켜봐!”

최풍원이 장석이에게 장팔규를 맡기고 북진임방을 나섰다.

최풍원이 강수를 데리고 북진나루가 내려다보이는 강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제법 녹음도 짙어졌다.

북진임방에서 나루로 내려가는 길목에도 봄기운이 무르익었다. 북진뿐이 아니라 강 건너도, 멀리 큰 산까지도 온통 푸르른 봄기운으로 가득 찼다. 이젠 한양으로 보낼 공납품을 보낼 날짜가 불과 얼마 남지 않았다.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 배를 북진나루로 보내기로 한 날짜는 채 열흘이 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천지개벽을 선적할 청풍 산물과 특산품을 완벽하게 준비해놔야만 했다.

장사는 신용이었다.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 북진임방 최풍원에게 다른 물산도 아니고 대궐에 공납할 물산을 부탁한 것도 어찌 생각하면 모험 중 모험이었다. 자칫 무슨 일이라도 생겨 차질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윤 객주와 거래하는 한양 객주는 치도곤을 당하고 윤 객주 또한 큰 거래처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로인해 윤 객주 상전이 망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윤 객주가 최풍원에게 공납품을 맡긴 것은 그를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청풍도가처럼 탄탄하게 기반이 잡힌 장사꾼들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최풍원은 윤왕구 객주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있는 힘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주님, 저기 있어요!”

강수가 골몰하게 생각에 빠진 채 걷고 있는 최풍원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가 말이냐?”

“애들이요!”

최풍원도 공납할 물산 걱정에 잠시 자기가 하려는 일을 잊고 있었다. 강수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청초호를 지나 어은탄이 있는 여울 쪽에 사람들이 보였다. 최풍원과 강수가 청초호 옆 강둑을 따라 어은탄으로 올라갔다. 장석이가 말한 대로 어은탄이 흐르는 물가 자갈밭에는 구레골에서 바구니를 싣고 왔던 동몽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녀석들은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하며 자갈밭 위에 널어놓은 무언가를 열심히 뒤적거렸다. 자갈밭에 널려있는 것은 말리고 있는 물고기였다. 그런데 물개는 보이지 않았다.

“물개는 어딜 갔냐?”

강수가 녀석들에게 물었다.

“저기요!”

녀석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은탄이 쏟아져내려오다 움푹 패여 소를 이루고 있는 강물 한가운데였다. 아마도 물개는 고기를 잡으려고 잠수를 해서 물속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물빛이 시퍼랬다. 그 물빛을 보다 최풍원은 잠시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최풍원은 지금도 깊은 물이나 소를 보면 소름이 끼쳤다. 이미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한대도 물을 보면 왠지 무서웠다.

최풍원이 지금의 청풍도가 우두머리인 김주태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누이동생 보연이를 그 늙은 애비 김 창봉에게 동첩으로 빼앗기고 뛰쳐나왔을 때였다. 그때 청풍나루에서 만난 사람이 충주 유주막에 사는 도진태 선주였다. 아무것도 없이 알몸으로 나온 최풍원이 할 일은 청풍에 없었다.

도 선주는 최풍원이 어려서 뱃일을 할 수 없다고 매정하게 내쳤다. 그래도 최풍원은 끈질기게 매달렸다. 최풍원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허락을 받은 최풍원은 도 선주의 배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다녔다. 그러다 배타는 일을 그만 둔 것은 사고가 나고 나서였다. 사고가 났던 곳은 어은탄에서 하류로 내려가 재구미 마을 앞에 있는 포탄여울에서였다. 그때 도진태 선주가 아니었다면 최풍원은 벌써 예전에 물고기 밥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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