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요즘 나의 오른쪽 눈이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았다. 신경과에도 가보고, 안과에 가서 검안을 받아보니 백내장이란다. 수술을 예약하고 수술을 받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 요즘 백내장 수술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몰렸기 때문이다.

처음 받아보는 수술을 하고나니 그렇게 희미했던 눈이 세상을 새롭게 보는 것 같이 밝고 맑았다. 내가 만일 앞 못 보는 맹인(盲人)이라면 보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클까. 사람에게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하면서 ‘눈(目)이 보배야’하고 소리를 칠 것만 같이 기뻐했다.

예부터 ‘몸이 천양이면 눈은 구백량’이라 했다. 그만큼 우리의 눈은 신체기관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고대 설화에서 비롯된 심청전은 비록 가부장적인 유교사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앞 못 보는 아버지의 고통이 얼마나 애절했으면 선원에게 공양미 300석에 인당수 깊은 물에 몸을 던졌을까. 황당한 이야기지만 눈먼 아비를 위한 효녀 심청이의 갸륵한 효심에서 당시에도 눈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정서가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음이 아닌가.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을 많이 한다. 백번을 들어도 한 번 보는 것 만 못하다는 말이다. 또 봉사가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한다는 속담도 세상을 보지 못하는 맹인의 답답함을 비유하여 일상에서 늘 쓰는 말이다. 실제로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각이 86%, 청각이 6%의 정보를 느끼고 산다는 조사도 있지만, 창조의 아이디어는 눈의 관찰에서 솟아난다는 과학자들의 연구도 있다.

눈은 오체(四肢+머리), 오장육부의 정기가 모이는 곳이다. 뇌로 가는 혈류의 90%가 눈에 쏠리고 있어 피곤하면 눈부터 벌겋게 되는 이유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窓)이라 할 만큼 일상에서 느끼는 사람의 감성을 눈빛 하나로 직감한다.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PC와 TV를 눈앞에 두고 살지만 특히 청소년들은 스마트 폰을 눈앞에 달고 살다시피 한다. 불시에 겪게 되는 사고와 미세먼지 등 우리의 환경 저해요인으로 부터 ‘눈 건강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듬거리는 지팡이 끝에서 느껴지는 촉각 하나로 길을 가고, 안내원을 따라가며 쇼핑을 하고, 잘 훈련된 안내견(犬)의 목줄을 잡고 따라가는 맹인의 측은한 모습을 가끔 본다. 전국 시각 장애인 25만 명 중 절망에 빠진 20%가 자살 충동을 느끼며 산다는 조사도 있다. 시각장애인의 82%가 저소득으로 우울증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맹인의 생계 보장을 목적으로 특정 지자체에 안마사자격을 시각장애인에 한하여 부여하고 비장애인의 진입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고, 국민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위헌결정이 내렸다. 나라가 우리를 버렸다고 “생존권을 보호해 달라”고 맹인들이 한강으로 뛰어들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당국에서는 직업선택에 취약한 맹인들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여 생계에 희망을 주어야한다.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기 때문이요, 인생의 꿈을 열어가는 힘도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이 있어 행복한 것 이다. 이렇게 눈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만큼 무엇보다 눈이 보배가 아닌가싶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