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야, 너는 지금 바로 대방을 찾아 이리로 데리고 오너라!”

최풍원이 수산장 어디엔가 와있을 동몽회 대방 도식이를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강수가 먼길을 걸어와 앉지도 못하고 선 자리로 있다가 그대로 주막집 삽작을 빠져나갔다.

“대주님, 짐은 어찌 할까요?”

마당에 남아있던 동몽회원들이 물었다.

“쌀과 소금은 풀어놓고, 황기와 천삼은 일단 마소에 실어 놓거라!” 

최풍원은 무거운 쌀과 소금섬부터 풀어 우마부터 쉬게 학고, 봉놋방이라도 잡히면 덕산 수염쟁이 약초노인에게 구한 황기와 대전 인삼곶 언구네서 구한 천삼을 방으로 들일 요량이었다. 동몽회원들이 풍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대주님, 지도 뭘 시켜 주시우.”

장팔규가 최풍원에게 일을 달라고 했다. 종일을 하릴없이 줄래줄래 다른 사람들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것도 곤욕일 터였다. 최풍원도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아직은 장팔규가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송계 구레골 집을 떠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장팔규 표정만 보면 고민하는 구석이 전혀 없다.

“저기 우마하고 짐을 지키고 있거라!”

최풍원이 주막집 삽작 밖 한길 가에 묶어둔 우마와 짐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산장거리는 사방에서 장꾼들이 몰려드는 길목이어서 제법 북적거렸다. 더구나 수산에서 충주로 가려면 봉화재를 넘어야 하는데 이미 어둑해진 저녁 어스름에 재를 넘어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그래서 장꾼들은 봉화재 아래 수산장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또 죽령 넘어 풍기나 영주로 가는 경상도 장꾼들도 단양을 지나 큰재 아래 대강까지 하루에 당도하려면 수산에서 식전부터 서둘러야 할 만만찮은 거리였다. 그래서 많은 장꾼들은 시간을 가늠해 수산장에 머물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수산장거리는 하룻밤 묵고가려는 장꾼들로 항시 붐볐다.

장팔규는 주막집 앞 한길 가에 쭈그리고 앉아 우마를 지키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장팔규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맨날 그날이 그날이던 송계 구레골 고랑탱이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 참 많은 것을 보았다. 하도 지긋지긋해서 하루에도 열두 번은 벗어나고 싶은 집구석이었지만, 그래도 집이라고 해가 지고 날이 저무니 마음 한 구석에서는 걱정스런 마음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장팔규가 집 생각에 가슴 찡함을 떨쳐보려고 애써 딴 생각을 해보려 할 때였다.

“넌, 뭐하는 놈이냐?”

“?”

장팔규가 말없이 소리 나는 쪽을 올려다보았다. 눈앞에는 사내 두엇이 장팔규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섬은 뭐냐?”

사내 두엇 중에서 우마 옆에 내려놓은 섬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나귀 등에 실린 것은 또 뭐냐?”

“난 몰러유!”

“그럼 네 것이 아니란 말이냐?”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수상쩍은 놈이구나!”

“어디서 온 놈이냐?”

“이놈 당장 대답을 하거라!”

사내놈들이 돌아가며 장팔규를 몰아세웠다. 이사람저사람이 닦달을 하자 장팔규는 얼이 빠져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어안이 벙벙할 할 뿐이었다.

“야! 거기 섶을 뒤져봐!”

사내 놈 중 한 놈이 당나귀 등에 실려 있는 짐을 가리켰다.

“안돼유!”

장팔규가 당나귀 앞을 가로막고 섰다.

한길 가에서는 시비가 벌어졌는데도 주막집 안에 있는 최풍원이나 동몽회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다. 순딩이고 나이 어린 장팔규가 장바닥에서 굴러먹는 사내놈들과 맞서는 것은 애당초 승산이 없는 일이었다. 사내들 중에서 한 놈이 장팔규를 허깨비 치우듯 옆으로 밀어버리고 당나귀 등에 실려 있던 섶을 풀어헤쳤다.

“성님, 황기가 들었어유!”

“뭐라고 황기! 그 궤짝도 열어봐!”

“성님, 삼베가 들었고, 봉투가 있어유!”

“봉투 안에는 뭐가 들었냐?”

“안돼유!”

궤짝을 뒤지던 놈이 천삼이 든 봉투를 발견하고 열려고 하자 장팔규가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그 놈의 팔뚝을 물어버렸다. 그 바람에 봉지 안에 있던 천삼이 땅바닥에 쏟아졌다.

“성님, 이건 홍삼인대유!” 궤짝을 뒤지던 놈이 오만상을 쓰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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