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장뇌 갖고 관아에 바치러 갔다가 속이려 했다고 매 맞아 황천 구경 갈 일 있슈?”

“청풍도가에서는 장뇌를 산삼으로 둔갑시켜 바친다고 하지 않았소?”

“하이고! 그건 그 놈들이 서로 짜고 이득이 생기니 하는 일이고, 돈 있는 장사꾼에게야 뜯어먹을 것이 많지만 백성들이 그리하는 것을 눈감아준다고 자신들에게 뭐 생기는 게 있슈!”

대전 사람들이나 도기 사람들이나 청풍관아 아전들과 청풍도가 장사꾼들의 결탁으로 극심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청풍관아는 고을민들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주리를 트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며 청풍도가는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를 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당하고만 있는 두 마을사람들의 처지가 최풍원은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달리 어찌 할 뾰족한 방도는 없었다.

“주인장, 아무리 짜고 둔갑을 시킨다 해도, 백지 생잡이로 장뇌를 산삼으로 그리 하지는 않을 것 아니오? 그걸 받아 관리하는 관원도 눈이 있을 텐데?”

“그야 그렇지유. 진짜 산삼과 뒤섞어 공납을 하지유. 그리고 그놈들은 거미줄처럼 맺어져 서로서로 뒤를 봐주니까 탈이 나지 않지유.”

“나쁜 놈들! 거렁뱅이 쪽박을 깨지, 살기 팍팍한 사람들 뭘 뜯어먹을 게 있다고…….”

수염쟁이 약초노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세상이 참으로 많이도 변했다. 사람들이 점점 사물어져만 간다. 아무리 살기가 각박해져 남 생각할 겨를이 없다손 쳐도 주위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제 끝날라나 모르겠지만, 말세여!”

수염쟁이 약초노인이 긴 한숨을 지었다.

“노인장, 여기 대전 인삼을 거래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소이까?”

최풍원이 수염쟁이 약초노인에게 언구와의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것을 부탁했다.

“나도 대전 삼 농가와 청풍도가가 같이 어우리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우. 하나에서 열 까지 청풍도가의 손이 미치고 있다면 삼을 빼내는 것이 쉽지는 않을텐데 어쩔런가 모르겄네.”

수염쟁이 약초노인도 이제껏 대전 인삼마을과 왕래를 해왔지만 이곳의 실정을 낱낱이 알게된 것은 오늘이 처음인 듯싶었다. 거간도 서로에게 기미가 보이거나, 무엇보다도 어느 정도 여건이 갖추어져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수염쟁이 약초노인이 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와 이번에 거래를 트고 싶소이다!”

“이보게 언구, 여기 북진임방 최 대주가 자네와 거래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데 의향이 있는가?”

“…….”

수염쟁이 약초노인의 물음에 언구가 최풍원의 관상을 한참이나 살피더니 정과를 만드는 아궁이에 불 지피는 일에만 몰두했다.

“주인장, 우리 북진임방과 거래를 합시다!”

최풍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달려들었다.

“형씨,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유. 잘못해서 청풍도가에 밑 보이는 날이면, 난 가업으로 내려오던 이 일을 작파해야 해유. 그런데 어떻게 오늘 처음 본 사람과 그 위험천만한 일을 한단 말이유?”

언구는 청풍도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청풍도가에 의존하고 있는 언구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청풍도가와는 어떤 거래 조건을 맺은 것이오?”

“내가 수확하는 인삼이나 장뇌삼, 가공하는 물견들을 처분하려면 일단 청풍도가를 거쳐야 해유. 삼을 수확하기까지 청풍도가에서 대준 경비를 모두 제하고 내 모가치로 떨어진 삼도 마찬가지요!”

“만약 어기면?”

“다음 농사 지을 자금을 대주지 않을 것은 뻔하고, 온갖 빌미를 대서 날 거덜 내겠지유.”

“이봐 언구, 그래도 뒤로 빼돌려놓은 게 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나하고 계속 거래하기로 약조했다네. 그러니 날 믿고 한 번 터보게나!”

수염쟁이 약초노인이 언구를 부추겼다.

“주인장, 나도 이번 공납 일만 끝나면 청풍도가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강구해볼 테니 한 번 생각 좀 해보시구려?”

“어떤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단 말이유?”

언구는 최풍원이 방법을 강구해보겠다는 말에 다져먹었던 마음이 약간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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