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필자는 어떤 회의나 모임에서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가끔 있다. 전체적인 맥락은 이해되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한다. 특히, 필자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경우에 그렇다. 이렇게 상대가 하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발생할 때, 필자는 대체로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 다시 이야기 해달라고 요청하거나, 둘째,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되묻거나, 셋째, 그냥 이해한 것처럼 넘어간다. 세 번째 반응은 주로 상대가 어려운 대상이거나, 초면이거나, 어색한 관계 등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나타난다.

젊은 시절의 필자는 주로 세 번째 즉, 이해가 되지 않았음에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방법을 주로 선택했다. 강의나 회의를 마치고 질문시간이 주어어질 때 궁금한 것을 용기 내어 물어보지 못하고 후회하곤 했다. 질문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이런 질문을 하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질문할 기회를 놓치고 나면 더 큰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서 조금씩 용기를 내어 질문하기 시작했고, 이제 두려움은 거의 사라졌다.

직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회의를 할 때 대부분 질문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면 사람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궁금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했을 때 받게 될 시선과 비난 때로는 웃음이 두려운 것이다. 과거 질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기분이 상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불만은 있지만 그 자리에서는 말하지 않고 밖에 나와서야 안전하게 실컷 비난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회의는 모여서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시간이 되고 만다.

필자는 그리고 그들은 왜 이렇게 질문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질문 받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 유명한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이유를 조사한 결과, 배의 설계자와 조선(造船)사들 사이에 이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동료나 상급자들에게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를 제기하면 바보로 취급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발사 후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사소한 부품의 결함이 사고 원인으로 밝혀졌다. 부품회사는 12도 이하의 날씨에 해당 부품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발사 당일(1월 28일, 기온 2도) 회의장에서는 아무도 이와 관련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부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발사를 다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어보았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질문 하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거리낌 없이 질문을 받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보통 남자들은 운전을 하다 길을 찾지 못할 때 지나가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스스로 길을 찾아내려고 한다. 물어보면 금방 해결될 텐데 질문하지 않아서 고생을 한다. 사소한 것일수록 더욱 질문이 꺼려진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말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근본적이고 사소한 것부터 질문을 하고, 받아야 하지 않을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