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답은 또 뭔 소리요?”

“대주, 관이 우리같은 것들 편을 들어주겠소, 아니면 권세 있고 돈 있는 양반네들 편을 들어주겠소? 더구나 자기 땅에서 자기 소작료 받는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이오. 외려 남의 땅 부처 먹고 소작료도 안 내고 거저먹으려 한다고 치도곤이나 당하기 십상인 일을 왜 한다오?”

“참으로 답답한 일이구려. 그건 그렇고 반씩이나 땅세로 빼앗기고 어떻게 산답니까?”

“그러니 죽을 지경 아니겠소이까. 죽을 수는 없고 어떻게라도 살아보려니 대바구니도 만드는 것 아니겠소.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기는 예전보다 똥싸게 더 바쁜데도 살기는 더 어려워지기만 하니 그게 문제요.”

“그게 다 창말 김 판서네가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요. 그 전에는 배는 곯았어도 억울한 일은 별로 없었다고요.”

젊은축은 모든 것이 김 판서네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름이 뭐요?”

최풍원이 젊은축의 이름을 물었다.

“장팔규요!”

“억울하다면 앉아서만 속을 끓일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해봐야할 것 아니오?”

“관아도 김판서와 한 통속이고, 마을사람들도 하나같이 눈치만 살피며 수구리하고 있는데 뭘 해본단 말이오?”

장팔규는 남 다리 긁는 소리만 같은 최풍원의 말에 짜증이 났다.

“그렇게 억울하고 힘들다면 김 판서를 찾아가 사정이라도 해봐야할 것 아니냔 소리요?”

“대주, 그건 그렇지 않소! 우리한테는 식구들 목숨줄이 걸린 문젠데 어떤 사정인들 해보지 않았겠소?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김 판서를 찾아가 굶어죽게 생겼다며 땅세를 내려달라며 읍소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오. 외려 돌아오는 것은 매타작뿐이었다오!”

버들쟁이 구씨가 장팔규를 대신해 그간의 형편을 전했다.

“호소하러 간 사람에게 매타작을 해요?”

“월악산 아래 송계에서 김 판서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소. 그가 왕인데 그깟 매가 대수요? 두어 달 전에는 팔규 아부지가 약초를 감춰두었다가 들통이 나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아직도 장독이 풀리지 않아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오!”

“그래서 저렇게 원한이 맺혀 있는 것이구려!”

최풍원은 그제야 장팔규가 왜 저렇게 독이 올라있는가를 알았다.

버들쟁이 구 씨 이야기는 이러했다. 지난 초봄 장팔규 아버지가 월악산 고무서리 골짜기에서 산삼 밭을 만나 횡재를 했다. 덕주봉과 용암봉 사이에 있는 고무서리는 수도 없이 다녔는데, 그 골짜기에서 삼밭을 만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팔규 아버지는 월악산 신령님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천하고 박복한 자신 같은 무지렁이에게 이런 횡재가 올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절을 하고 캐고, 절을 하고 캐고 그렇게 산삼을 다 캐고 나니 그제야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이대로 지고 내려갔다가는 산삼의 반은 김 판서네 산지기에게 바쳐야할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산삼을 몽땅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김 판서와 산지기 얼굴도 떠오르고 굶주림에 찌들린 식구들 얼굴도 떠올랐다. 저 산삼만 온전히 팔 수 있다면 식구들 얼굴도 집안 살림이 확 필 것이었다. 팔규 아버지는 궁리 끝에 산삼을 숨겨두었다가 날이 어두워지거나 산지기 눈을 피해 집으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산짐승이나 다른 약초꾼들 누에 띄기라도 할까 염려되어 산삼 담은 주루막을 풀섶에 숨겨놓고 돌을 쌓아 자기만 알 수 있도록 표식을 해놓았다. 혹시나 없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리해놓고 산을 내려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혹시 이웃으로 퍼져나갈까 걱정되어 식구들에게 산삼 캔 이야기는 입도 뻥끗 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 판서가 그걸 어찌 알았단 말이오?”

최풍원이 물었다.

“그러게 말이오. 팔규 아부지가 산삼을 가져올 기회를 살피느라 몇날 며칠 동안 고무서리 골짜기를 드나들었다 네요. 그리고는 주루막을 열어 산삼을 확인하고 다시 풀섶에 숨겨두고 내려오곤 했다는 거요. 그런데 그 바랑이 없어졌다는 거요!”

“숨겨놓은 바랑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오?”

“그러게 말이오. 꿈인가 생시인가 아득해서, 산삼을 캤던 것도 꿈에서 본 것 같고, 며칠이나 오가며 주루막 속 산삼을 살폈던 것도 꿈에서 일어난 것 같아 허망한 심정으로 집으로 와서 냉가슴만 끓이고 있었대요.”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