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옥천 군북면에 있는 환산성은 옥천읍 남서부를 둘러싸고 있는 삼성산성과 함께 관산성으로 추정되는 산성 중의 하나이다. 삼성산성은 옥천읍 남서쪽을 둘러싸고 마성산성까지 3개의 부속된 산성과 보루를 거느리고 고리처럼 이어져 있다. 고리산성이라고도 불리는 환산성은 옥천 고을의 동북 방향에 작은 봉우리마다 6개의 보루를 거느리고 역시 고리처럼 이어져 있다. 삼성산성이 백제로부터 옥천을 방어하는 신라의 전진기지라면, 환산성은 신라군으로부터 옥천을 지키는 백제의 전진기지라고 말할 수 있다. 옥천 사람들은 삼성산성을 관산성으로 안다. 신라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역사에서 말하는 관산성 전투는 백제가 점령한 신라의 전진기지 관산성의 이름을 빌려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신라는 이 전투를 환산성 전투라고 부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환산성에 머물던 남부여(백제) 태자 부여창이 이끄는 삼만의 군사를 신라 김무력 장군이 백골산성까지 쫓아가 전멸시키고 대승하였으니 성왕의 구진벼루 비극을 백제 운명의 시작점으로 삼아도 될 것이다.

환산성을 가고 싶었다. 신라 진흥왕이 백제 성왕과 삼한일통 패권경쟁에서 승리의 전환점을 마련한 운명의 성이기 때문이다. 환산성은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해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군북면 소재지인 이백리의 고리산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반대쪽인 추소리로 하산한다. 부소담악을 구경하고 추소정에서 호수 바람을 맞으며 쉬다가 마을버스를 타고 이백리로 돌아오면 하루 답사 일정으로 충분하다.

군북면사무소에 주차하고 산행 들머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면사무소에서 큰 길 쪽으로 나오면 도로 건너 왼쪽에 환산로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 지하도를 지나 한 50m 올라가니까 들머리 이정표가 보였다. 정상까지는 4.85km, 2시간 30분이면 족하다. 그런데 만만찮은 된비알이다. 처음부터 숨 가쁘다. 그래도 옥천군에서 지그재그로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숲길이다. 시원하고 싱그럽다. 공기도 깨끗하다.

이백리는 국도, 철로, 고속도로가 한꺼번에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 군사적으로 요지이다. 기차소리, 자동차소리가 요란하지만 그윽한 새소리가 귀에 더 가깝다. 묵은 땀이 쏟아져 흐른다. 땀은 되직하고 질척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의 게으름으로 온몸에 찌들었던 삶의 찌꺼기가 한꺼번에 빠지는 기분이다.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주능선에 올라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25분쯤 걸렸다. 돌을 재미있게 세워 놓고 의미 있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태극기까지 게양했다. 땀을 씻고 바로 출발하였다. 능선에 올라 땀을 닦으며 주변을 조망하였다. 군북면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해발 360.4m, 환산성 제1보루이다. 돌이 엄청나다. 성의 높이와 규모를 짐작할만하다. 표지석에는 삼태기형 석축산성이라고 했다. 둘레는 217m이다. 규모로 보아 보루라기보다 부속산성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옛 성돌을 가져다가 예비군 참호를 만들었다. 현대판 보루이다. 여기는 예나 지금이나 요새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안내판 설명에는 여기서 증약 쪽으로 오르면 옥녀봉이라는 전망대 같은 봉우리가 있는데 거기가 제 2보루라고 한다. 그냥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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