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치닫던 한반도의 정세가 한차례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16일 판문점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고위급회담이 전격 취소됐다. 북측의 제의로 예정된 남북고위급회담은 4·27 판문점선언 후속 이행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이었다. 남북은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8·15 이산가족 상봉 행사 준비를 위한 적십자회담과 장성급회담 일정 등을 협의할 예정이었다. 또 판문점선언에 들어간 남북 간 철도 연결사업과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는 시점에서 북한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회담을 취소했다.

첫 번째 명분은 한·미연합공중훈련이다. 연례적인 훈련이지만 올해 특히 추가된 것은 미 국방부 전략폭격기 B-52의 참여 여부다. 전략폭격기 B-52는 적지에 들어가도 적의 눈에 띄지 않고 비행할 수 있는 폭격기로 알려졌다. 남북판문점 선언에 이어 북미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풍계리 실험장 폐기 수순을 밟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훈련 축소가 아닌, 오히려 강화한 이번 훈련이 납득할 수 없는 문제일 수 있다. 미국은 물론이고 국방부와 청와대 간의 좀 더 치밀하게 소통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로 송영무 국방장관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을 급히 만나 B-52는 애초부터 이번 훈련에 참여할 계획이 없었다고 확인했다. 그렇다면 회담 취소의 근본 원인은 따로 있는 셈이다.

다음은 존 볼턴 미 백악관 보좌관에 대한 책임론이다. 볼턴은 북미회담이 결정된 이후 트럼프와 다르게 지나치게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을 두 차례나 방문하고 북미회담을 실질적으로 조율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도 입장차를 나타냈다. 볼턴의 발언은 매번 반복될 때마다 수위가 높아져 회담을 무산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당초 예상한 완전한 비핵화를 넘어 리비아식 비핵화와 인공위성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폐기, 미국으로의 핵 반출, 북한 인권문제 등 북한의 체제 자체를 뿌리 채 흔들고 있다. 이에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문을 발표해 “세계는 우리나라가 처참한 말로를 걸은 리비아나 이라크가 아니라는데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면서 “일방적으로 요구만 한다면 북미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언론도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할 정도다. 북미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 싸움은 있을 법하지만, 지나치게 나갔다 전 세계가 고대하고 있는 북미회담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 보다 더 큰 손실은 없다.

김계관 부상의 주장대로 리비아와 북한의 상황은 다르다. 볼턴이 두 나라의 경우를 같은 맥락으로 추진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트럼프가 비핵화 방법에 리비아식이 아닌 트럼프식이 있다고 밝히며 일단락되고 있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북미 양측의 견해차가 노출된 만큼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곧 있을 한미회담에서 문대통령은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충분히 전달하고 북한에도 미국의 입장과 견해를 충분히 전달해 접점을 넓혀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도 북한을 테러국 대하듯 한다면, 비핵화가 주된 목적인 북미회담이 결코 성사될 수 없다. 북한의 체제를 존중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 북미회담이 성과를 낼 수 있다. 볼턴을 비롯한 미국의 극우세력들은 북한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먼저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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