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절도 행각에 농지 오염·출하 앞둔 미나리 전량 폐기
송유관공사 “보상 명분·규정 없어…절도범이 피해 보상해야”

 

송유관을 뚫어 기름을 훔치려던 절도사건으로 인해 충북 청주의 한 농지가 기름범벅이 됐지만 보상 규정이 없어 농가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사진)

청주시 현도면에서 농지를 빌려 20년 가까이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는 오윤진(61)씨는 2천700평에 달하는 미나리논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지난해 11월 19일 미나리논에 물을 대러 간 오씨는 물이 아닌 시커먼 기름이 밭을 가득 채운 장면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자신의 밭으로 지나는 송유관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한 오씨는 곧바로 ‘대한송유관공사’에 이같은 사실을 신고했다.

절도범에 의해 도유사고를 당한 것이다.

오씨 등에 따르면 당시 송유관공사는 곧바로 현장에 달려와 추가누유를 막았고, 이를 일찍 신고해준데 대해 최선의 장화작업과 보상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씨는 “송유관공사 직원들이 와서 오염된 부분의 미나리를 우선 제거해 달라고 해 얼음물에 들어가 미나리를 베는 등 협조에 최선을 다했다”면서 “누유사실을 일찍 발견해 줘 금강이 오염되지 않아 크게 감사하다며 충분한 보상을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고 넉 달 만인 지난 9일 송유관공사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고 오씨는 주장했다.

보상가액까지 정해 놓고 걱정 말라고 안심시킨 뒤 이제 와서 보상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씨는 “12년 거래한 녹즙업체 납품도 이미 잘렸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생계가 막막한데도 보상을 해주는 곳이 없다”면서 “송유관공사에서 당초 충분한 보상을 약속했지만 지난 9일 갑자기 소송을 하라며 태도를 바꿨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기름누출 사고로 오염된 토지와 미나리는 손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출하를 앞둔 미나리는 전량 폐기해야 했고 사고 넉 달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 농사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주장과 함께 보상을 해줄 명분도, 법적 기준도 없다는 입장이다.

송유관공사 관계자는 “도유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가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피해보상 주체가 송유관 공사가 아니라 아직까지 잡히지 않은 ‘절도범’으로 송유관공사는 피해보상을 해야 할 법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만 정화작업의 경우 송유관공사가 진행하는 게 맞아 미나리논 옆 농지는 이미 정화작업을 마친 상황”이라면서 “피해를 입은 미나리논의 경우도 송유관공사가 정화작업 주체라서 청주시 서원구청에서 정화작업을 명령했지만 보상 전까진 정화작업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현재 정화작업을 진행치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법률상 도유사고로 인해 토지가 오염될 경우 정화작업은 대한송유관공사가 책임을 지지만, 피해보상의 경우 절도범에게 직접 청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상 피해 농민을 구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도유사고로 인한 토양오염으로 지장물 등이 피해를 입게 되면 농민이나 토지주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라면서 “법을 떠나 상식으로 볼 때도 송유관공사가 우선 변제한 뒤 절도범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게 절차상 맞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현행 법률은 송유관공사에 유리하도록 돼 있는 만큼 반드시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씨는 29일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에 “절도범이 대한송유관공사의 송유관을 절도해 미나리논에 기름이 유출돼 피해를 본 농민이 피해보상을 어디에 청구할 수 있냐”면서 “기름유출로 인해 하루아침에 12년간 거래했던 거래처도 잃고 미나리 논도 오염돼 당장 미나리 농사를 지을 수 없어져 생계가 많이 어려워졌는데 피해보상을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어 “대한송유관공사의 관리소홀로 인한 잘못은 정말 없는 건지, 기름유출 피해로 인해 땅 임대료, 복합비료비, 종자비, 거름, 퇴비, 인건비, 포크레인 비용 등 엄청난 복구비용으로 인해 막막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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