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 북진에도 강포 좀 많이 가져다주시오!”

최풍원이 천용백의 설명을 듣고 강포를 가져다 북진에서 팔면 고을민들에게도 본방에도 두루두루 도움이 될 것 같아 많이 가져올 수 없냐고 물었다. 지금 청풍에서는 좋은 삼베 한 필에 두 냥 가까이 주어야 했다. 그런 좋은 베는 돈을 만들어 관아에 세금도 내야하고, 빌려먹은 장리쌀도 갚아야 하니 식구들이 옷을 해 입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 벌써 수년 전에 해 입은 옷을 몇 년씩 입다보니 헤진 곳을 꿰매고 또 덧 돼 옷이 아니라 누더기였다. 그런 고을민들이 열에 아홉은 되었다. 만약 강포를 들여온다면 반값이라고만 해도 한 냥이 되지 않으니 고을민 입성에 큰 보탬이 될 것 같았다.

“아직은 삼 수확철이 아니니 강포도 비싸고, 첫 수확이나 끝나면 그때 생각해보세!”

천용백이 삼 수확철이 되고 본격적으로 강포가 생산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삼베 값이 떨어질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삼베를 만드는 재료가 되는 삼실은 삼을 키워 벗긴 껍데기를 가공해 만드는데, 삼을 수확하려면 늦봄이나 여름 초입은 되어야 했다. 지금 나오는 강포는 지난 해 짜놓은 것들이니 아무래도 값이 수확 철보다 비싼 것은 당연했다.

“형님, 같이 온 일행들이 지고 온 등짐은 뭐유?”

한참을 노닥거린 후에야 최풍원이 천용백과 같이 온 사람들을 물었다.

“난, 기풍이라 하외다. 풍기에서 약상을 하고 있소이다. 여기 같이 온 사람들도 함께 약재를 다루는 사람들이오.”

천용백 대신 약재상을 한다는 기풍이가 스스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아이고! 형님부터 소개를 시킨다고 한다는 게 수다를 떨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려. 죄송합니다요!”

천용백이 기풍이를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형님의 형님이니 당연히 제게도 형님이 되시겠습니다. 저는 여기 북진본방 대주 최풍원이라고 하옵니다.”

최풍원이 얼른 나서서 인사를 했다.

“여기 형님은 고종간인데 집안 대대로 약상을 하시는구먼. 풍기에서는 아주 떠르르하게 소문이 나있구먼. 내가 북진을 간다하니까 이차저차 한 번 살펴보러 오신다기에 함께 왔다네.”

“그럼 지고 온 저 등짐들은 모두 약재들인가요?”

“약재도 있지만, 풍기가 인삼이 유명한 곳 아닌가. 그래서 갖가지 인삼들을 가지고 왔다네!”

“형님들 잘 되었습니다. 기왕에 오셨으니 북진에서 장사를 해보시지요. 제가 가가를 한 칸씩 내드릴 테니 형님은 약전을 펴시고 형님은 피륙전을 펴보시지요? 하루가 다르게 우리 난전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리고 있으니 잘만 하면 톡톡히 재미를 보실 것 같습니다 마는요?”

최풍원이 용백이와 기풍이에게 이왕 나선 길에 북진난장에서 전을 펼쳐보면 어떻겠냐고 의향을 물었다. 의향을 묻기는 했지만, 최풍원의 속내는 그들이 여기에서 전을 펼치고 장사를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북진에 난장을 펼치며 처음보다는 장꾼들도 몰라보게 불어나고 뜨내기 장사꾼들도 점차 생겨나기는 했지만, 장사하는 물목들이 호구지책을 겨우 해결하는데 있다 보니 장마당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팔리고 안 팔리고는 둘째로 치더라도 우선 물목들이 다양해지고 풍성하면 눈요기하러 오는 사람들이라도 몰려들 것이고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면 난장에 활력을 붙을 것 같았다.

“난, 큰 장사꾼이라는 동생 이야기만 듣고 왔더니 장이 뭔가 어설퍼보이는구먼. 이런데서 약전을 열어 팔리기는 할까. 춘궁기라 그런 건가 아니면 본래 이런 건가?”

약상 기풍이가 북진난장의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최풍원의 제의를 떨떠름하게 받아들였다.

“아, 예에…….”

최풍원은 생각지도 못한 약상 기풍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천용백이와 최풍원이 처음 만난 것은 덕산장에서 만나 수산장까지 동행했던 그때였다. 최풍원은 장사를 할 목적보다도 북진본방을 만들어놓고 앞으로 어떻게 운영을 해나가야 할까를 고민하며 나귀를 끌고 인근 향시를 둘러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니 굳이 악다구니를 하며 흥정을 할 까닭도 아등바등 물건을 사고 팔 일도 없었다. 그런 최풍원이 천용백이의 눈에는 청풍읍장 같은 오래된 장터에서 터를 잡고 장사를 하는 토박이 장사꾼처럼 보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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