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경 희  < 논설위원 >

유럽인들은 전통적으로 11월1일을 ‘모든 성인(聖人)들의 날(All Hallow Day)’로 지켜왔는데 그 전날인 10월의 마지막 날도 ‘모든 성인들의 날 이브(All Hallows’ Eve)’라는 이름으로 기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할로우스 이브는 할로윈(Halloween)으로 바뀌어 지금의 할로윈 데이로 자리잡게 됐다고 한다.

영국의 켈트족은 자신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 사람이나 사람을 대신한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베풀었으며 이것이 바로 ‘할로윈 데이’의 기원이었다.

할로윈 데이의 대표적인 상징이 유령이나 마녀들이 길을 정하지 않고 떠돌 것으로 여겨 망령의 갈 길을 밝혀주려 켜두는 호박등 ‘잭-오-랜턴(Jack-o’ Lanterns)’이다.

큰 호박의 속을 도려낸 뒤 도깨비의 얼굴을 새기고 양초를 넣어 도깨비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호박등의 유래는 다분히 동화적이다.

원래 소박한 어린이 축제

마귀를 속여 골탕먹인 뒤, 죽게 된 교활한 주정뱅이 잭은 그에게 앙심을 품은 마귀의 주술로 저승에 들지 못하고 추운 아일랜드의 겨울 암흑 속을 방황한다.

추위에 지친 잭은 마귀에게 구걸해 숯을 얻게 되는데,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호박 속을 파서 숯을 넣어 랜턴을 만들었고 이것이 할로윈을 상징하는 ‘잭-오-랜턴’이 됐다는 이야기다.

할로윈 데이에 대부분의 미국가정은 현관의 불을 환하게 밝히고 동네 어린이들을 기다린다. 갖가지 괴물이나 귀신으로 분장한 어린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 : 대접하지 않으면 주술을 걸 거야)’하고 외치면서 자루를 내밀면 어른들은 그 자루 안에 준비한 한 줌의 과자나 사탕을 넣어주는 것이 할로윈 데이의 소박한 풍습이다.

할로윈 분장용 의상이래야 20불이하의 저렴한 가격이라는데, 떠들썩한 소비적 파티가 아닌 일년을 두고 먹을 주전부리 감을 모으는 동네 꼬마들의 재롱잔치가 바로 평범한 서구 할로윈 데이로 비춰진다.

그런데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져 이교도들의 축제가 된 서양인들의 이 귀신축제가 슬그머니 우리 땅에 상륙하더니 발렌타인데이와 함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매김한 것 같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서양귀신 잔치가 몇 년 사이에 할로윈 이상 열풍이라는 우려가 생길 만큼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그 유래나 의미가 어떻든 그저 값비싼 파티 의상을 두르고 입장료만 해도 몇 십만원씩 하는 호텔 댄스 파티장에서 부나비처럼 하루를 사르는 퇴폐적인 날로 할로윈 데이가 굳어진 모양이니 한심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재빠른 상술들과 맞물려 특별한 날 중의 특별한 날로 대접받는 할로윈 데이는 크리스마스 등 기존의 축제일보다 오히려 더 야단스럽고 호화롭게 한판 즐기는 광란의 날이 돼버린 듯하다.

쇼핑몰과 호텔, 놀이공원들은 앞다투어 연령, 취향별로 각종 행사를 기획, 대대적인 댄스파티와 의상쇼 등을 마련해 한몫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다.

외래문화 추종 경계해야

할로윈 데이가 생겨난 서구에서의 이 날은 개구쟁이 꼬마들의 잔칫날일 뿐 성인들이 흥청망청 퇴폐적인 유흥에 젖는 축제일이 물론 아니다.

간혹 파티가 열리는 경우도 있으나 흔치않은 일이며 소비적인 축제를 광고한다는 말은 듣지도 못했다.

한국보다 몇 년 앞서 할로윈 문화를 받아들인 프랑스, 러시아 등지에서도 이와 같은 회의론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지나치게 상업화한 할로윈을 지키지 말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분위기인데 파리의 카톨릭 청년회가 서유럽의 전통적인 기독교 명절인 만성절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며 벌이는 반 할로윈 캠페인은 열띤 호응을 받고 있다.

독일어보존협회가 젊은이들의 맹목적인 미국문화 추종에 가한 일침이 가히 타산지석 감이다.

“문화를 관용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문화의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인 중 누가 독일의 ‘성 마틴 축일’을 지키는가?

옳은 말이다.

지나친 외래문화 추종을 경계하는 일이 어찌 단순한 남의 문화 배척으로 폄하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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