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미투(MeToo)의 기세가 식을 줄 모른다. 철옹성 같았던 법조계에서 당겨진 방아쇠는 연예계, 문화계, 교육계를 넘어 정치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미투는 놀라움을 넘어 허탈감마저 주고 있다. 가해자는 당연히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용기 있게 미투 행동을 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보호해 줘야 한다. 필자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 못지않게 가해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성폭력은 사회적으로 상위에 있는 강자가 그 지위에 순응해야 하거나, 거부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약자에게 가하는 ‘권력행사’의 하나이다. 군대에서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행하는 가혹행위, 대학 선배가 후배들에게 하는 폭력, 병원 간호사들의 ‘태움’문화처럼 성폭력은 지위나 신체의 힘을 이용한 잘못된 권력행사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의 권력행사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학교와 책, 정부정책과 언론 등에서 수 없이 듣고 교육 받았다. 그런데도 왜 성폭력은 사회 전반에 걸쳐 독버섯처럼 번져있는 것일까? 자신도 성폭력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왜 끊임없이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 수면욕 그리고 성욕이라고 한다. 3대 욕구란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인간의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식욕과 수면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지금 당장 자신의 생명에 지장을 받게 되며, 성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인간의 미래가 존재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욕구들 중 성욕에 대해서는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인간이 욕구를 채우는 방법을 처음 배우는 곳은 가정이다. 부모나 형제가 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자신에게 대했던 방식으로 욕구를 채우는 방법을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그런데 성욕은 좀 다르다. 성욕에 대해서는 부모나 형제가 제대로 보여주거나 가르쳐 준 적이 없다. 최근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이미 시기가 늦고 내용도 부족하다. 아이들은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성에 대한 무의식이 형성되어 있다.

학교나 사회에서 배운 지식과 관습으로 형성된 나는 진짜 내가 아니거나, 아주 작은 일부분 일에 불과하다. 나의 진짜 모습은 의식적 가치관을 교육받기 이전, 즉 가정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 사회에서 형성된 가짜의 내 모습은, 자기 자신도 모를 정도로 교묘하게 진짜 나를 위장한 가면이다. 가면을 벗은 진짜 모습은 어떤 특정 상황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자신 보다 약자인 피해자와 단 둘이 있거나, 자신의 권력에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의식 속의 진짜 내가 나타난다. 그리고 가해자는 자신이 받았던 방식과 똑 같이 피해자를 대하고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은 잠재적 가해자가 무수히 많다. 이들이 현재적 가해자로 나타나기 전에 치유해야 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어린 나에게 괜찮다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부모님한테도 그때 하지 못했던 아픈 마음을 토해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나와 가면 쓴 나 사이의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고, 건강한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정부의 정책도 여기에 집중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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