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최풍원은 노스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최풍원의 머릿속에는 청풍으로 떠난 박왕발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박왕발이가 제대로 최풍원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도 염려되었고, 그것을 듣고 임방주들이 호응을 해서 충주 윤 객주 상전까지 얼마나 오려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하기만 했다. 간간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 뿐 창룡사 요사채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고요함이 더더욱 최풍원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최 대주, 충주에 오는 길이면 언제 들려서 차나 한 잔 하고 가시게.”

원범 노스님이 최풍원에게 일렀다.

최풍원은 합장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 무거운 업장을 어떻게 풀꼬!”

창룡사에서 내려가는 최풍원의 뒤를 보며 노스님이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노스님은 세 사람이 모퉁이를 돌아 소나무숲길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합장을 한 채 서있었다. 그 빈자리에서 당나귀 방울소리만 땡그랑땡그랑 들려왔다.

“원범 큰스님은 잘 계시던가?”

창룡사에서 돌아오자 윤 객주가 우갑 노인에게 물었다.

“네, 무탈하십니다.”

“이젠 연세가 있으셔서 산중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실 텐데.”

윤 객주의 얼굴에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낯빛이 역력했다.

“아직은 정정하시더이다.”

“그래, 다행이구먼. 그런데 최 대주는 본방 일도 바쁠 터인데 어째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서 배회하고 있는가?”

윤 객주가  최풍원을 보고는 건성으로 물었다.

“객주 어른께 쌀을 얻지 못하면 돌아갈 수 없습니다!”

최풍원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어제 이미 끝난 얘기가 아닌가? 내가 쌀을 내줄 수 있도록 신표를 보이란 말일세!”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보여드릴 것입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하면서도 최풍원은 내심 불안했다. 어떻게 될지 그 결과를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녁때가 가까워져도 충주 윤 객주 상전에 나타난 임방주는 하나도 없었다. 몸이 점점 달아올랐지만 최풍원으로서는 기다려볼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촌음이 여삼추였다. 그때였다.

“대주, 기별을 받자마자 채비를 하고 바로 왔는데도 이제야 도착했소!”

박왕발의 아버지 연론의 박한달 임방주였다. 역시 발 빠른 박한달이 제일로 먼저 도착했다. 그런데 박한달과 같이 온 사람들의 지게와 소의 잔등에는 싸리로 엮은 통발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것들은 다 뭐요?”

“참나무 숯이요!”

“참나무 숯은 왜 가져온 것이오?”

“왕발이 말을 들으니 쌀을 가져가려면 뭐라도 내놓고 가져가라고 하는데, 대주가 돈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고 하기에 뭐라도 돈 될 만한 것이 없을까 해서 가져온 것이오.”

“연론 임방주님, 참으로 고맙소이다!”

“숯은 완전 상품이오!”

박한달 임방주가 소 잔등에 실린 숯 통발을 탁탁 치니 숯에서 쇳소리가 났다.

“학현 임방도 왔소이다.”

“교리 임방도 왔소이다!”

학현임방 배창령과 교리 임방 신덕기도 함께 들어왔다.

“어째 두 임방주는 같이 오셨소이까?”

“내가 오는 길에 교리에 들려 신 임방과 같이 왔소이다.”

두 임방주들도 둥개둥개 무슨 물건들을 잔뜩 지고서였다.

“두 분 임방주님도 오시느라 고생하셨소이다.”

모든 임방주들이 속속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들어왔다. 윤 객주 상전 안안밖에는 북진본방에서 온 임방주들과 데리고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장 늦게 도착한 임방주는 북진 장순갑이었다.

“형님 오느라 고생 많았소!”

최풍원이 먼저 반갑게 맞이했다.

왕발이가 헐래벌떡 왔기에 뭔 일인가 해서 그냥 달려왔다. 장순갑 임방주는 지게도 없이 달랑 빈 몸인 채였다.

“그럼 왕발이는?”

“우리 임방에 들려서는 조산촌으로 간다고는 쏜살같이 고개를 넘어갔다.”

“그 때가 언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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