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충주 윤 객주 상전의 이인자라 해도 쌀이 쉰 석이나 되는 양이니 우갑 노인도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쌀 쉰 석이 적은 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설령 잘못된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윤 객주 상전이 타격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정도 양이면 윤 객주 상전에서는 새참거리에 불과했다. 그래도 장사는 물산 관리가 최우선이었다. 물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리 장사를 잘해도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것이 장사였다. 윤 객주 상전에서는 그것이 철두철미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최풍원은 그것을 보며 하루빨리 북진본방도 충주 윤 객주 상전처럼 들고나는 물산 관리를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윤 객주 상전에 비하면 북진본방은 아직도 걸음마하는 아이나 다름없었고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최 대주, 우리 상전에서 북진본방으로 나간 물건들이 대략 얼마쯤 되는지는 알고 있는가?”

우갑 노인이 치부책을 펼치며 물었다.

“대충은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챙겨도 밑 가기 십상인 것이 장사인데, 장사에 대충이 어디 있는가. 더구나 이제는 여러 임방을 거느리는 본방인데 그리 장사를 하면 안 되네!”

최풍원은 실로 오랜만에 우갑 노인으로부터 따끔한 질책을 받았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얼마나 되는가요?”

최풍원이 머쓱해진 얼굴로 물었다.

“삼백 냥이 조금 넘네!”

우갑 노인이 치부책을 펼쳐 보이며 북진본방에서 윤 객주 상전에 지고 있는 빚을 알려주었다.

“그쯤 될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임방을 만들 때 들어간 전체 물건 값이네. 그러니 각 임방들로 들어간 물건들 값은 북진본방에서 따로 해놓았겠지.”

우갑 노인이 최풍원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 본방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본방에서 모든 걸 관리하기로 약조를 했기에 별도로 임방들 치부책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득이 생기면 모든 임방이 똑같이 나누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본방에서 모든 걸 관리한다고 해도 그건 안 될 일일세! 더구나 공동으로 이득금을 나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렇게 해서 장사가 제대로 될 것 같은가?”

우갑 노인이 최풍원을 심하게 질책했다.

“입방주들이 전을 꾸릴 능력이 없어 본방에서 물건을 대주는 대신, 본방도 어려우니 자리가 잡힐 때까지만 그리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 하다가는 청풍도가와 맞서기 전에 북진본방에서부터 분란이 일어나겠네. 장순갑이가 왜 상전을 찾아왔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겠네!”

“자리가 잡힐 때까지만 서로 힘을 합쳐 일을 해보자는 것이 뭐가 잘못 됐다는 것인지요?”

우갑 노인의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최풍원은 속에서 치미는 불덩어리를 누르며 조곤하게 따져 물었다.

“어려울 때 각 임방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어떻게 이득금을 똑같이 나누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참으로 어리석네!”

“어리석다고요?”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이 장사를 하는 목적이 뭔가?”

“잘 먹고 잘 살아보려는 것 아닙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는가. 각 임방마다 파는 물건이 다르고, 파는 양도 다른데 똑같이 이익 분배를 한다면 누가 열심히 하려고 하겠는가. 열심히 하거나 그냥 최소한 시늉만 하거나 해도 돌아오는 것이 똑같은데 뭣하려 열심히 하겠는가. 최 대주,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런 방법으로 장사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네!”

우갑 노인이 단언했다.

그러나 최풍원은 우갑 노인의 생각에 따라 북진본방의 장사 방법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장사가 꼭 한 가지 방법만 있다는 고집도 옳은 생각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꿀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장사였다. 그런 점은 우갑 노인과 최풍원의 생각은 달랐다. 최풍원도 북진본방의 지금 장사 형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묘안을 짜보아도 빈손이나 다름없는 임방주들과 함께 본방의 장사를 궤도에 올려놓고 임방도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지금의 방법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각 임방들의 실적에 따라 이득금을 분배하려는 의도였다. 물론 최풍원도 우갑 노인의 뜻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북진본방이 청풍도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장사를 하려면 힘을 길러 우선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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