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청청하니 걷기에는 그저 좋은 날이었다. 세 사람은 북진나루를 건너지 않고 남한강 북쪽 강줄기를 따라 황석나루와 오산의 후평나루를 지나 진목·서운·함안을 지나 화암에서 꽃바위나루에서 강을 건넌 후 마즈막 고개를 넘어 충주성으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본래는 북진나루를 건너 광의리·양평으로 해서 서창·한수를 지나고 황강·살미를 지나 안보 삼거리를 거쳐 노루목으로 해서 충주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왕래하지 않아 마을 토박이들이나 이용하는 길을 최풍원 일행이 선택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최풍원이 행상을 다니면서도 강 북쪽 마을로는 거의 행보를 하지 않았다. 물론 청풍관아를 중심으로 강 동쪽과 남쪽에 많은 마을과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행상들조차 이쪽 지역으로는 별반 출입이 드물었다. 따라서 거의 오지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마을마다 특색에 있어 그곳에서 산출되는 물산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사고 파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반짝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때가 지나면 일 년 내내 외지 사람들의 행보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럴 때면 강 북쪽 마을인 월굴·황석·후산·계산·부산·단돈·방흥·오산·진목·호운·사기 같은 마을에서는 소금 한 됫박을 사려해도 강을 건너고 먼 길을 걸어 청풍 읍내까지 나와야 했다. 최풍원의 생각에는 이들 마을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북진으로 올 수 있게 할까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들 동네에서는 어떤 산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또 마을사람들의 사는 형편은 어떠한가도 이번 가는 길에 살펴볼 생각이었다.

“장석이 형, 저기 좀 쉬었다 갑시다.”

최풍원이 십여 그루의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강가 숲이 나타나자 말했다.

“거기가 느티매기 숲거리여.”

방흥이었다. 방흥에는 논이 없었다. 강 북쪽에 있는 마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대덕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들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깊은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논을 만들 만한 지형이 아니었다. 마을들은 하나같이 산골짜기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고 산기슭을 따라 밭들이 있을 뿐이었다.

특히나 청풍에서도 이쪽 지역은 밭만 있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물산들은 무·배추·잡곡·콩류들이었다. 특히 무는 워낙에 이름이 나있어 예전부터 임금님께 진상을 했다고 전해온다. 무뿐만 아니라 콩이나 팥들은 품질이 뛰어나 수확이 한창 때면 방흥나루터에는 임시로 난장이 틀어지기도 했다.

“여기 느티매기 소들은 일 잘하기로 소문이 나있어. 여기 소는 금도 더 비싸!”

느티나무 아래 지게를 벗으며 장석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마을 언덕배기 곳곳에서 소들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다른 것은 나는 게 없어?”

“여기서 나는 마늘하고 땅콩도 유명해.”

“근데 저기 산 둔덕으로 나있는 길은 뭐지?”

“왼쪽이 뒷골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백석고개여. 뒷골재를 넘어가면 진목이 나오고, 백석고개로 가면 동량 지동이여. 우린 충주로 가야하니까 뒷골재를 넘어 진목으로 가야 혀.”

최풍원이 방흥마을 뒤편으로 나있는 소로를 묻자 장석이가 소상하게 일러주었다.

방흥에서 뒷골재를 넘어서자 오산이 나타났다. 오산을 지날 때는 마을사람 몇몇이 담 너머로 최풍원 일행을 구경하기도 했다. 소와 당나귀에 잔뜩 실은 물산들 하며 지게를 진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이렇게 지나가는 모습을 쉽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세 사람은 오산을 지나 진목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진목을 인근에서는 참나무골이라 불렀다. 전해오는 말로는 이곳 마을 중 한 곳인 새터에 도토리나무가 많아 생겨난 이름이라고도 했다. 진목은 청풍부 수하면에 속하는 지역으로 인근에서는 가장 큰 마을로 충주가 있는 중원과 경계가 되는 지점이었다. 마을 앞 강가에는 진목나루가 있어 한수 황개와 연결이 되었다.

“대주, 저기가 참나무골인데, 거기서 뗏목이 자요!”

“어린놈이 그걸 어떻게 아냐?”

세 사람이 진목에 다다랐을 때 박왕발이가 최풍원을 보며 아는 척을 했다. 그러자 장석이가 무시하는 말투로 박왕발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엄마 친정곳인데 왜 몰러유!”

박왕발이가 장석이에게 맞서며 대거리를 했다.

“왕발이 말이 맞어. 저기 마을 앞강이 당앞소인데 거기가 뗏목이 자는 데여.”

장석이도 박왕발이 말이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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