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본방에 입고됐던 물산들 정리를 끝낸 며칠 뒤 최풍원, 장석이, 박왕발 셋은 충주 윤왕구 객주 상전을 가기위해 길을 나섰다. 소와 나귀에게 짐을 잔뜩 지우고도 모자라 최풍원과 장석이 지게에 짐을 잔뜩 지고서였다. 박왕발만이 빈 몸으로 소와 나귀 고삐를 잡았다.

“너무 괴의치 말거라. 너는 너대로 할 일이 있으니.”

지게를 진 두 사람이 신경이 쓰이는지 박왕발이 자꾸 힐끗거리자 최풍원이 말했다.

“이렇게 가다간 오늘 해거름이 되도 충주에 가기는 글렀습니다.”

박왕발이가 무료한지 두 사람의 걸음걸이를 탓했다.

“임마, 이 짐을 지고 오늘 안에만 가면 되지 웬 조바심이랴?”

장석이가 핀잔을 주었다.

“느적느적 걷는 것이 더 힘들어 그럽니다.”

“아무리 걸음이 빠른 놈이라지만 천천히 가는 것이 더 힘들다니 참으로 이상한 놈이구나.”

장석이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박왕발이를 빤하게 보았다.

“그래 맘껏 걸으면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느냐?”

이번에는 최풍원이 물었다.

“재보지는 않았지만, 재게 걸으면 하루 이백 리야 못 걷겠습니까?”

“그러니 우리와 같이 가려니 답답하기도 하겠다.”

장석이가 박왕발이의 말을 듣고 그 심정을 이해했다.

이백리 길이면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못할 거리였다. 보통 잘 걷는다는 사람이 하루에 칠팔십 리를 가면 잘 걷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백 리라면 그 세배에 가까운 거리였다. 북진에서 충주까지가 육십 리 길이었다. 최풍원과 장석이가 충주와 청풍을 오갈 때 새벽처럼 떠나면 점심 새참에 도착하곤 했었다. 물론 짐을 진 채였다. 빈 몸으로 걷는다 해도 점심나절에 당도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리고 그렇게 걷는 날은 충주에서 유숙을 하거나 중간쯤에서 자고 이튿날이 되어야 청풍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박왕발이는 청풍에서 충주를 왕복하고 다시 충주로 갈 정도로 빠르다고 하닌 빨라도 보통 빠른 걸음이 아니었다.

“왕발아, 우리 한 번 잘해보자!”

최풍원은 박왕발이를 잘 다독거려 제 할 일을 찾게 해주고 싶었다. 북진본방에서도 녀석을 잘만 이용하면 큰 득이 될 게 틀림없었다. 최풍원은 박왕발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풍원아 윤 객주님이 쌀을 준다 해도 쉰 석이나 되는 것을 어떻게 하지? 우리 마소로도 어림없잖아?”

장석이는 벌써부터 쌀을 북진으로 옮길 일이 걱정이 되나보다.

“형은 그게 걱정이 되우? 난 그것을 주시기는 할는지 그게 걱정이구먼.”

북진본방에서 임방주들과의 회합이 있던 날부터 최풍원이 걱정은 그것이었다. 북진본방에서 충주 윤 객주 상전에게 진 빚만 어림잡아도 수백 냥은 될 성 싶었다. 최풍원이 행상을 다니며 장사를 할 때만 해도 그리 큰 빚은 없었다. 그때는 외려 한 번씩 행상을 마칠 때마다 솔찮은 이득금을 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빚이 생긴 것은 임방을 차리면서부터였다. 여덟 개 임방 모든 곳에 물건들을 무상으로 차려주며 생겨난 빚들이었다. 물론 지금 마소와 자신들의 지게에 진 물산들이 일부 물건을 팔고 받은 것들이지만 값이 어떻게 매겨질지는 가봐야 알 일이었다. 문제는 값이 얼마가 매겨진다 해도 상전에서 가져온 물건 값을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 값을 일부라도 갚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이 쌀 쉰 석을 더 꿔달라고 사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주기는 할까?”

“주기만 한다면 옮기는 거야 뭔 대수여.”

장석이의 걱정과는 달리 최풍원은 그게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쌀 쉰 석을 얻어 북진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것이 어쩌면 북진본방의 사활이 거린 문제였다. 북진본방이 청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기로의 문제이기도 했다. 청풍도가의 횡포로 고을민들의 원성이 높을 때 이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장사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었다. 굶어가는 고을민들을 위해 쌀을 풀어 인심을 사는 것은 북진본방의 존재를 사방에 알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한두 석도 아닌 쉰 석이나 되는 많은 쌀을 외상으로 얻어 와야 하는 형편이니 최풍원은 그것이 걱정 될 뿐이었다. 최풍원은 그런 걱정으로 지게에 진 물산들의 무게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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