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참 좋은 생각이오. 임방에서는 일손도 덜고, 배곯는 이들은 쌀이 생겨 좋고, 본방과 임방에도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니 장사가 잘되는 것 같고, 그러다보면 여기저기 마을에 소문이 나면 사람들도 점점 늘어날 터이고, 이래저래 좋겠는데.”

단리 복석근 임방주였다.

“배곯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든 나눠주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 임방들은 본방 대주에게만 너무 무거운 부담을 주는 것 같아 걱정이오.”

김길성이 북진본방의 가장 당면한 문제를 거론했다. 그것은 북진본방의 존폐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처음 북진본방에서 청풍 인근에 여덟 개의 임방을 차릴 때 들어간 모든 물품들은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 모두 외상으로 들여온 물건들이었다. 최풍원은 우선 물건들을 받아 판매를 한 후에 값을 치르기로 우갑 노인과 약조를 했다. 윤 객주 상전으로부터 받은 물건들을 양평 임방주처럼 모두 처분을 한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른 임방에는 현물과 외상으로 깔려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장사는 것이 팔리든 팔리지 않던 손님이 찾는 물건을 언제든 갖춰놓아야 했다. 임방에 물건들이 있어도 장사를 하다보면 손님들이 찾는 물건이 자꾸 생겨나는 법이었다. 애초 최풍원의 생각은 각 임방에서 물건을 팔고 받은 산지의 물산들을 본방에 모아 충주 윤 객주 상정에 물품대금으로 넘길 작정이었다. 북진본방에는 그동안 각 임방에서 입고시킨 물산들이 집 안팎에 쌓여있었다. 윤 객주 상전에 그것을 넘겨 우선 급한 대로 외상을 갚고 필요한 물품들을 다시 외상으로 들여오려 했다. 그런데 그것이 어려워졌다. 광의 임방주 김길성은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북진본방에 집산된 물산들로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다시 필요한 물품들을 외상으로 받아오려 했던 계획은 우선 더 급한 식량 문제에 부닥쳐 미뤄둬야 할 형편이었다. 각 임방주들이 자신들의 마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내린 결론이나 최풍원이 청풍 인근 향시를 둘러보고 내린 결론은 같았다. 청풍 인근에서 가장 시급한 물품은 양식이었다. 양식을 들여오면 임방에서 팔 물품들을 포기해야 했다. 또 양식을 충주에서 청풍으로 들여올 수 있을는지 여부도 북진본방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충주 윤 객주 상전의 처분에 달려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문제를 북진본방의 최풍원 대주에게만 떠맡겨놓은 것이 김길성 임방주는 미안한 것이었다.

“대주, 어차피 우린 한 배를 타기로 한 사람들이오. 우리가 대주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장사를 하는 길 밖에 없소. 우리는 본방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어떤 이득도 받지 않을 테니 대주는 충주 상전과 잘 타협해서 물품 수급이나 해주시우!”

“이봐! 그게 젤루 힘든 거여!”

아직도 돌아가는 사태파악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교리 임방주 신덕기에게 길길성 임방주가 핀잔을 주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장사가 한 바퀴만 돌리면 그 다음에는 어느 정도 지가 알아서 굴러가니 수월한데 그 한 바퀴 돌리기가 참 힘들구먼!”

연론 박한달 임방주였다. 박한달도 대를 이어 장사를 해온 사람이니 지금 북진본방이 겪고 있는 당면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고비만 넘기고 봄이 오면 형편이 훨썩 나아질 것이니 서로서로 도와가며 견디어봅시다!”

학현임방 배창령이 임방들을 부추겼다.

“모두들 고마운 말씀들입니다. 어쨌든 윤 객주 상저에서 곡물이나 물품들을 구해오는 것은 내 소임이니 너무 염려치 마시오. 더구나 여러 임방주께서 본방이 자리 잡힐 때까지 성심으로 도와주신다니 나도 충주에 가서 성심을 다해 힘을 써보겠소이다!”

최풍원이 임방주들을 독려했다.

“대주, 우리 임방주들 중에서 서넛은 충주로 동행해야하지 않을까?”

“그러게. 사람만 아니라 마소도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몇몇 임방주들은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 일이 성사된 것처럼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소이다. 일단 충주에 내려가서 일의 진척을 봐가며 기별을 할 테니 각 임방주들께서는 임방에 가서 기다리기 바랍니다.”

“우리 북진본방 최풍원 대주에게 박수를 쳐줍시다!”

광의 김길성 임방주가 다른 임방주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임방주들이 최풍원을 향해 박수로 힘을 실어주었다. “연론 임방주께서는 돌아가는 길로 아들을 본방으로 보내 주시오. 이번 행보에 데려가 볼 생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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