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석근은 청풍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모두 청풍도가의 농간이라고 말했다. 또 작년보다도 올해 더 힘겨워진 것도 청풍도가의 파렴치한 짓거리라고 단언했다.

“우리 놋장골 유기장들도 모두 청풍도가 종이 되고 말았소!”

복석근 임방주가 전하는 단리의 사정은 이러했다. 단리의 놋장골이란 지명도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놋그릇으로 인해 부르게 된 이름이었다. 단리 놋장골에서 생산되는 유기는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질도 좋은데다 모양까지 빼어나 아는 사람들은 안성유기보다도 이곳 유기를 더 윗질로 쳤다. 이런 소문이 나자 청풍도가에서는 미리부터 놋장골 유기장들을 매수하여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유기들을 독점하고 있었다. 이렇게 선점한 유기들은 청풍관아에 공납하여 한양의 이름난 집으로 들어간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인지 청풍에서 내로라하는 위세 떠는 집안에서도, 심지어는 향교나 인근 절집에서 제를 올리는데 필요한 그릇을 구하려 해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단리 놋장골 유기는 값이 다락처럼 치솟았고, 웬만한 사람은 돈을 쌓아놓고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유기장들이 종이 되었다는 소리는 뭐요?”

“청풍도가에서 주는 밥이나 먹고 놋그릇이나 두들이게 됐으니 하는 소리요.”

놋장골 유기장들도 처음에는 청풍도가에서 한양의 고관대작들에게 바치기 위해 특별히 주문하는 고급 유기를 만들어주면 높은 값을 쳐서 사가고, 민간에서 쓰는 사사로운 유기들도 도가에서 모두 맡아 팔아주니 너무나 편했다. 유기를 만들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판에 장사까지 해야 하니 몸을 쪼개 써도 이중삼중으로 힘에 겨웠다. 더구나 놋그릇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다. 종일 불과 싸워야하고 종일 망치로 두들겨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유기가 잘만 팔려도 몸 고생이 덜어졌겠지만, 전 식구가 달려들어 까막 고양이가 되도록 만들었는데 팔려나가지 않으면 식구들 먹고사는 문제는 고사하고 당장 그릇을 만들 재료조차 구입할 수 없었으니 그 마음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런 것을 청풍도가에서 대신 해주어 유기장들은 부담 없이 그릇만 만들면 되었으니 진정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청풍도가가 놋장골 유기장들의 코를 꿰기 위한 미끼였다.

“놋장골 유기장들은 몽땅 청풍도가에 빚쟁이가 되어 아무리 일을 해도 그걸 갚을 처지가 되어버렸소!”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소이까? 

처음에는 청풍도가에서 유기장들이 만들어놓은 물건들을 후하게 사주었지만 점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물건이 잘 나가고 들어오는 돈도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자  놋장골 유기장들은 너도나도 있는 돈 없는 돈을 몽땅 털어 유기들을 만들었다. 그러자 무작정 사들이던 청풍도가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유기들 매입을 끊어버렸다. 장사라는 것이 내 물건이 잘 팔려나가고 그 돈으로 먹고 살며 또 재료를 사 물건을 만들고 이런 작업들이 끊이지 않고 돌고 돌아야 사람들 생활이 윤택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청풍도가에서는 어떤 목적을 위해 일부러 농간을 부려 그런 순환 고리를 끊은 것이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더 큰 폭리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장사가 더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리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면서까지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그건 장사꾼이 아니라 사기꾼이었다. 장사의 기본은 물건이 부족해 곤경에 처한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을 수급해주며 그 수고비를 받는 것이었다.

청풍도가에서는 갑자기 매입을 끊음으로서 놋장골 유기장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폭락한 유기를 헐값으로 사들이는 수법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기들이 팔리지 않아도 생활은 해야 했다. 청풍도가는 이래저래 곤경에 빠진 놋장골 유기장들에게 비싼 고리로 생필품들을 대주고 유기를 만들어 대신 갚도록 했다. 유기를 만들려면 구리와 주석 같은 재료가 필요했다. 청풍도가에서는 이런 재료들까지 직접 매입하여 유기장들에게 비싸게 대주었다. 미리 당겨 빌려주는 비싼 고리로 생활을 하고, 직접 사들였던 때보다 몇 배나 비싼 값에 재료를 받아 유기를 만드는데도 청풍도가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못하게 헐값으로 유기를 사들이니 유기장들은 매일 소처럼 일을 해도 늘어나는 것은 빚뿐이었다. 결국은 빚에 눌려 옴짝달싹도 못하고 청풍도가에서 주는 대로 먹으며 일만 하는 종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청풍도가 놈들은 지들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생긴다면, 마을사람들이 다 죽어나가도 눈도 깜빡하지 않을 악독한 놈들이오!”  

복석근 임방주가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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