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무술년이 밝았다. 아등바등 살다 보면 또 한 해가 속절없이 가겠지만, 어쨌든 희망찬 새해다. 마치 12월의 반성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새해가 오면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한다. 매일 책 읽기. 하루하루의 일상 기록하기, 일주일에 詩 한 편 완성하기 이것이 나의 목표다. 다른 이들은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흔히, 건강과 돈이 최우선이지 않을까. 그것이 삶의 이유가 된 지 오래된 세상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건강과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도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지 말자는 소박한 투쟁일 뿐이다.

12월의 반성으로 무술년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다. 필리핀 사람으로 보이는 남녀가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고 숯을 피웠다. 이십 대로 보이는 청춘남녀, 동그란 외모가 참 앳돼 보였다. 무슨 연유로 먼 이국땅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을까. 흔히, 돈을 벌기 위해 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말 못 할 사연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한동안 둘을 바라보았다.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하며 웃기도 하고 테이블과 손님을 향한 시선에 집중하기도 했다. 난 왜 그들이 애처로워 보였을까. 신성한 노동 앞에 왜 나는 그들의 노동이 맘에 들지 않았을까. 

언제부턴가 식당에서 일하는 외국인의 모습은 일상이 됐다. 경제가 성장하고 고학력이 되면서 저임금에 힘든 일을 하는 내국인은 많지 않다. 아르바이트 학생도 많지 않다. 동네 선술집에 아르바이트하던 여대생이 참 대견하고 기특해 보인 이유다. 부모 잘 만났으면 힘든 아르바이트를 안 해도 될 것을 남 속 모르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최저임금 7천530원 시대가 왔다.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고액 연봉자를 자르고 비정규직을 늘리던 기업은 비상이다. 낮밤없이 불 밝히는 편의점 사장들도 큰일이다. 최저임금 이야기만 나오면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장들이 속출하고 있다. 아예 밥값 등 수당을 줄이는 편법으로 실재 급여가 더 낮아지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잉여가치(M)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줄이기 어려운 불변자본(C)보다는 쉽게 조절 가능한 임금(V)을 줄이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아예 임금이 싼 외국으로 진출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친구는 오래도록 사는 이야기를 했다. 이직을 몇 번 했고 외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다행히 좋은 회사에 고위직으로 취직했지만, 월급쟁이 삶은 늘 위태롭다. 그가 처음 선택한 것은 구조조정. 고액 연봉자를 자르고 이윤에 불필요한 부서를 없앴다. 그래도 기업의 이윤이 오르지 않으면 외국인을 고용할지 모른다. 천지개벽할 일이 생겨도 자본주의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자본가는 변하지 않는다. 자본가와 손잡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노동자도 늘어갈 것이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그러니 난 친구에게 이윤율=M+(C+V)과 노동자의 관계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그저 친구와의 만남을 기록하고 시 한 편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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