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 할 말이 있소!”

연론 임방주 박한달이 말했다.

“해보시오!”

“실은 우리 큰자식놈 얘기요. 얘기하기도 남사스럽지만 이놈이 어려서부터 동네 저지레란 저지레는 다 저지르고 다니며 말썽만 피우는 놈인데 대주가 필요하다면 데려가 쓰시겠우?”

“연론 임방주께서 그러하신다면아 나는 좋지만 지금 당장은 여러모로…….”

최풍원은 일단 새경이 마음에 걸려 주저했다.

“우선은 밥이나 멕여주고 사람이나 만들어 장사나 갈쳐주시우.”

반한달이 최풍원의 속내를 알고 그리 말했다.

“집에서도 못 쓰는 망나니를 누굴 줘?”

그때 장순갑이 끼어들며 박한달을 힐책했다.

“누구 아들을 망나니로 모는 게여? 저지레가 심하다고 했지, 누구처럼 지 실속만 차리는 그런 막 되먹은 놈은 아녀!”

박한달의 입에서 장순갑을 멸시하는 말투가 튀어나왔다.

“온전한 놈이라면 새경도 못 받고 밥이나 멕여달라겠느냐?”

장순갑도 핏대를 올리며 박한달을 쳐다보며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누가 지 눔한테 맡아 달랬냐? 그놈이 역마살이 꼈는지 궁댕이가 가벼워 잠시도 한 자리에 붙이지를 못하는 놈이라, 빨빨거리고 다니는 일은 누구보다도 잘할 거요. 또 날 닮아 걸음이 얼마나 잰지 심부름꾼이 필요한 본방에는 그 놈이 제격일 것 같소이다.”

박한달이 장순갑의 말을 무시하며 최풍원에게 자신의 아들을 북진본방의 심부름꾼으로 쓰라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손 하나가 아쉬운 판에 최풍원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최풍원이 박한달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북진본방으로 아들을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다른 임방주들도 다행이라며 모두들 기뻐했지만 장순갑 만은 딴청을 피우며 외면을 했다.

“임방주님들, 나는 이번에 여러 날 청풍 인근 향시를 돌아보고 왔소. 어떤 물산들이 어떻게 거래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소이다. 이번에 내가 여러 날 청풍 인근 향시 동태를 살펴보니 우리 북진본방이 자리를 잡으려면 청풍도가와의 다툼은 필연적이요!”

“청풍도가와 싸움이 되겠소?”

장순갑 임방주였다.

“그렇소이다. 우리는 이제 시작인데 어떻게 청풍도가와 싸울 수가 있겠소이까. 개와 호랭이 싸움이요!”

양평 김상만 임방주도 장순갑의 의견에 동조했다.

“작은 놈은 큰 놈한테 붙어먹고, 없는 놈은 있는 놈한테 붙어야 살기가 편한 거여. 괜스리 주제도 모르고 날뛰다가 있는 놈한테 밑 보이면 살기만 힘들어지는 거여!”

장순갑이 김상만의 말에 힘을 얻어 김빠지는 소리를 했다.

“맞습니다. 아직은 우리가 힘이 없으니 청풍도가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오. 그렇지만 무슨 방법이 분명 있을 거요. 여러 임방주들 말씀을 들어보고 수일 내로 충주 윤 객주 상전에 내려가 작정이오. 임방주들께서는 근자에 장마당이나 마을 사람들 사정을 말씀들 해보세요.”

최풍원이 각 임방의 주변 사정들을 소상하게 말할 것을 요구했다.

“청풍 인근 사정이야 다 비슷하겠지만 학현은 훨씬 더합니다. 여러 임방주들께서도 잘 알겠지만 학현은 손바닥만한 화전뙈기도 부치기 힘든 곳이오. 마을사람 거개가 산과 들판에서 나는 것을 캐 먹고 사는데, 봄 것이 나려면 아직 멀었고 춘궁기인 지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오. 사람 사는 꼬라지라 할 수도  없소! 우리 학현 사람들의 가장 큰 수입원이 약초고, 그것을 팔아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나물들을 캐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올핸 그마저도 애당초 글러먹었소이다.”

“어째 그리 됐소?”

“작년 가을부터 약초 값이 똥값이 되었다오. 이전 같으면 말린 약초 한 관이면 쌀 두어 말은 너끈했는데, 무슨 연유인지 쌀 반말도 쳐주지 않는 거요. 봄부터 가을 내내 갈무리해두었던 약초가 겨우내 식구들 먹을 양식인데, 겨울도 가기 전 헐값으로 장에 내가 모두 팔아버렸으니 산골에서 뭘 먹을 게 있겠소. 내가 학현 토백이로 거기서 나고 여적지 살아왔지만 올해처럼 곤궁한 것은 첨이라오!”

배창령 임방주가 학현의 돌아가는 사정을 전했다.

“그게 다 청풍도가 놈들 농간이오!”

단리 임방주 복석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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