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삼성산성에서 용봉산성으로 가는 길에 전망이 아주 좋은 봉우리를 만났다. 용봉으로 착각할 정도로 전망이 좋다. 봉우리에 선 채로 하나하나 짚어 보았다. 저건 고리산, 식장산, 바로 저기 아득한 곳에 성왕의 사절지가 있다. 관산성전투에 대해 역사적 사실로만 알고 있다가 현장에서 지형에 맞추어 생각하니 더욱 실감난다. 함께 간 아들은 백제, 신라, 가야, 일본, 고구려와 당나라 등의 삼국의 역학 관계를 내게 상세히 설명해 준다. 일본에서 주장하는 가야에 대한 임나본부설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복잡했던 국가 간 이해관계에 대해 아들에게 설명을 들었다.

길은 아주 좋다. 길은 사람의 흔적이다. 옛 사람들이 긴장감 속에 다니던 이 길이 이제는 옥천 사람들의 호젓한 산책로가 되니 발걸음까지 부드럽다.

용봉에 올랐다. 하늘이 맑으니 시계가 아주 멀다. 동으로 고리산성의 성돌이 보일 것 같다. 북으로 식장산 안테나가 우뚝하다. 옥천에서 추부로 향하는 성왕로가 실지렁이처럼 기어간다. 옥천 고을이 한눈에 보인다. 옥천은 이제 평화로운 도시이다. 멀리 KTX도 평화롭게 달린다. 서울 부산으로 향하는 국도, 고속도로, 철로가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차지하려고 가련한 백성들의 목숨을 희생시켰는지 모른다.

정상에 산성 표지석이 있다. 용봉산성이다. 여기저기 돌무더기가 보이지만 모두 흙이나 잡초에 묻혀 있다. 무너진 돌무더기로 보아 성의 높이가 한 4~5m는 됐을 것 같다.

이 산은 마성산(옥천에서는 서마성산으로 부름) 줄기 중에 용봉에서 북서쪽으로 작은 능선 한 줄기가 갈라진다. 용봉산성은 용봉과 북서쪽으로 갈라진 능선 약 100m 정도를 감싸 안으며 테뫼식 석성으로 축성했다. 남서쪽 일부의 성벽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무너져 돌무더기가 됐다. 동으로 옥천 읍 쪽은 급경사이므로 미끄러지고 성돌에 발이 끼이기도 한다. 장대지와 망루가 있었다고 기록에서 말하지만 찾을 길이 없다.

안내판에는 성의 동쪽에 장대지가 있으며 성의 서쪽에 망대지가 있다고 하는데, 성벽은 남서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너져 원형의 모습을 알아보기는 힘들다. 남서쪽 성벽이 원형이 남아 있는데 잡초가 너무 우거져 내려가 보지 못했다. 성벽의 높이는 약 2m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건물지로 보이는 곳에도 쌓인 낙엽 때문에 기와조각 하나 찾을 수 없어 아쉬웠다.

용봉산성은 주위의 모든 성이 다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북쪽으로 자모리성, 노고성이 보이고, 가깝게 고리산성, 더 가깝게는 관산성, 서산성, 삼양리토성 보이고, 멀리는 지오리산성과 국원리산성이 보이며, 서쪽으로는 성티산성이 다 보인다. 물론 이제 올라갈 같은 산줄기에 있는 동평산성, 마성산성이 있는 봉우리들도 잘 보인다. 용봉산성은 주위의 13개성과 옥천의 들판 및 군서면 동평리 일부와 금산리를 제외한 군서면 들판이 다 보이는 성이다. 이런 탁 트인 전망으로 보아 관산성의 망루로 활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에서 정찰한 내용을 본부인 관산성에 연락한다. 그러면 관산성에서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서산성 삼양리토성, 마성산성으로 명령을 하달한다. 이런 체계가 아니었나 생각됐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동평산성으로 향한다. 동평산성은 여기서 600m 거리이다. 아주 가깝다. 이렇게 가까이에 왜 성을 쌓았을까? 누가 쌓았을까? 학자들의 연구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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