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755년, 당(唐)나라 무렵의 절도사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파죽지세로 낙양을 함락시키고 곧바로 수도 장안으로 향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당나라 현종(玄宗)은 불안하고 두려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상황이 위급해지자 퇴직한 명장 가서한(哥舒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가서한은 즉각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20만 관군을 통솔하고 반란군 토벌에 나섰다. 하지만 막상 반란군과 대치하고 보니 그 위세가 심상치 않았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가서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란군과 정면으로 맞서다가는 관군은 모두 패하고 말 것이다. 우선 동관(潼關)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반란군의 서쪽 진격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관은 한 사람이 천 명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였다. 관군은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기만 하였다. 이는 열흘만 버텨주면 각처에서 관군이 당도할 예정이었고, 그렇게 되면 반란군은 병력의 열세로 인해 스스로 궤멸할 것이라고 가서한은 장담하였다.

하지만 황제 현종은 초조하고 다급하여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당장 출병하여 반란군을 쳐부술 것을 명하였다. 이때 반란군 안녹산의 부하 중에 최건우(崔乾祐)라는 자가 군사 수천 명을 데리고 장안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방비도 허술하고 병사들도 나약해 보였다. 하지만 가서한은 그건 적이 미끼를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종은 생각이 달랐다. 즉각 관군을 출동하여 그들 먼저 사로잡으라고 명했다. 가서한은 왕명이라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이끌고 동관에서 출병하였다. 20만 관군이 장안 가까이 있는 반란군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러나 이는 가서한의 말처럼 반란군의 미끼였다. 반란군은 장안 주변에 군사를 매복하고 관군을 기다렸던 것이다. 가서한의 군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기습공격에 전멸하고 말았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현종은 사천 지역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러자 반란군은 신속하게 장안을 점령하였다.

군주가 장수에게 군대 통솔의 권한을 부여 했다면 장수를 믿어야 한다. 알지도 못하는 전쟁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간섭해서는 통솔이 어지러워지고 군대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는 결코 적을 이길 수 없다. 역사에서 그런 군주들은 모두 망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이는 ‘당서(唐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란 아무리 군주의 명이라고 하더라도 신하는 상황과 원칙에 따라 받들지 않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강한 적과 무조건 싸우라는 명령은 병사들을 다 죽이자는 것이니 장수가 받아들일 수 없고, 아무런 이익이 없는 땅을 빼앗으라고 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에 따를 수 없고, 그 밖의 대체로 나라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나,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나, 불법과 불의한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신하된 자들이 사욕을 부리며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신하된 자들이 정의를 앞세우면 나라가 튼튼하게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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