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에겐 ‘효(孝)’라는 단어가 아주 생소하다. 부끄럽지만 이제껏 제대로 된 효를 실천해 본 적이 없었다.

 효라는 것은 아주 거창하고 큰 것만이 효도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나이가 됐기 때문인지 부모님에게 더욱 미안하다.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집과 학교 등에서 거의 말이 없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감정표현이 서툴러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데다 화를 내야할 일에도 그냥 참고 넘어갔으나 지금은 아니다. 과거처럼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역시 말이 없을 뿐이다.

아빠와 엄마는 나를 부모 앞에서 말대답 한 마디 한 적이 없고, 큰 소리 한 번 친 것이 없는 착한 딸로 불린다. 어떤 날은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냈고,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은 나를 엉뚱하게도 ‘어른스럽다’고 말할 정도이니 말이 없는 것은 ‘병적’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내가 별다른 말썽 없는 일상생활이 효도 그 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애교도 없고, 말도 없고,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에게 존댓말을 써와서인지 이제는 거리감마저 느껴진다.

내가 가장 부모님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 속마음을 닫고 생활했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아직도 어린아이로만 생각하시만, 이제 내 나이는 19세로 내년이면 성인이 된다.

부모님에게 애교는커녕 응석조차 부리는 방법조차 잃어버렸다면 지난 친 것일까?

어른들은 흔히 자식이 잘 되는 것이 효도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자식이 잘되면 그걸로 족한 거라고, 병치레하지 않고 이만큼 커준 것만 해도 효도라고….

이 것이 어른들이 바라는 진정한 효도일까?

우리 부모님은 나를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아이로, 너무 쉽게 키운 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효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식이 힘 들 때 부모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눈다면 그것 또한 부모에 대한 효가 아닌가.

효라는 것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식과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그 자체가 진정한 효를 실천하는 것이리라.

박 은 지   옥천상고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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