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위진남북조 시대에 남송(南宋)의 장군 단도제(檀道濟)가 북위(北魏) 정벌에 나섰다. 단도제는 당나라 때에 편찬한 고대 명장 64인에 포함되었고, 송나라 때 편찬한 고대 장군 72명에 포함될 정도로 명성과 전략이 대단했다. 그는 한평생 전쟁터에서 배운 경험을 정리하여 36계(計)를 편찬하기도 했는데, 이는 후세에 아주 소중한 전략서로 평가 받고 있다. 게다가 그는 사병에서 시작하여 대장군에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라 북위는 그 명성을 듣고는 누구도 나와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간혹 용감한 북위의 장수들이 단도제를 가볍게 여겨 대적하였지만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 그렇게 단도제는 무려 30여 차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윽고 전진하여 북위의 중심지인 역성(歷城)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상황이 갑자기 불리하게 돌아갔다. 군영 내에 식량이 바닥나서 더 이상 북위 군대와 싸울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단도제는 비밀리에 모든 부대에 철수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비밀이 외부에 결코 알려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마침 병사 중에 한 명이 북위로 투항하면서 비밀이 새어나갔다. 그 병사는 단도제가 식량이 떨어져 철군을 꾀하고 있다는 정보를 팔았다. 북위 군영은 절호의 기회를 만났다고 크게 술렁거렸다. 그러나 섣불리 그 정보를 믿고 공격을 감행했다가 혹시라도 적의 계략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반론도 제기 되었다. 북위는 일단 그 정보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래서 단도제 진영으로 몰래 스파이를 보냈다.

일찌감치 적의 이런 동향을 예상했었던 단도제는 군량미를 담당하고 있는 관리와 병사들에게 철저히 준비를 시켰다. 저녁이 되면 양식을 점검한다면서 병사들이 모래를 쌀처럼 됫박으로 재었다. 모래를 됫박에 퍼 담으면서 한 되, 두 되, 한 석, 두 석…… 열 석! 하며 큰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이어 모래 가마가 한 가마 두 가마 높게 쌓여갔다. 주위에는 진짜 쌀알을 어지럽게 흩어놓았다. 누가 보아도 양식을 세는 것이 틀림없었다. 북위의 스파이가 며칠 이 광경을 보고는 돌아가 사실대로 보고했다.

“단도제 군영은 결코 양식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아주 넉넉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북위 군대는 공격 준비를 다 해놓고도 섣불리 쳐들어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투항해 온 송나라 병사를 스파이라 여겨 죽여 버렸다. 이 계책으로 단도제의 병사들은 모두 무사히 남송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는 ‘남사(南史)’에 있는 이야기이다.

창주량사(唱籌量沙)란 큰 소리를 외쳐가며 모래를 쌀로 속여 센다는 뜻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또는 가짜를 진짜로 속이는 전략을 말한다. 싸움에 나선 장수는  부하들에게 함부로 궁색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궁색함이 드러나면 부하들을 통솔하기가 쉽지 않다. 통솔이 어려워지면 전열이 동요한다. 결국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물론 불리할 때에는 일찌감치 달아나는 줄행랑이 으뜸이다. 하지만 물러설 때에도 항상 대비책을 가지고 있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신년에 혹시라도 불리한 국면을 맞게 되면 모래를 쌀처럼 담는 지혜를 떠올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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