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잡아 죽이고 싶었다. 나 하나 죽자고 달려들면 그리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뭐가 두려워 선뜻 그리 행하지를 못한 것인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자니 최풍원은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동상, 어여 일어나!”

최풍원은 비몽사몽간에 천용백이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깼다.

포장 밖으로 하늘이 푸르둥둥하게 새벽이 오고 있었다. 이미 수산 장터에는 주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온 장사꾼들과 이웃장에서부터 밤새 길을 걸어 온 장사꾼들이 하루 장사를 준비하느라 왁자했다. 천용백이도 벌써 피륙들을 모두 깔아놓고 장사 준비를 마쳐놓고 최풍원이 깨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잠자리가 그리도 편하던가? 그렇게 곤하게 자다니.”

“형님이 깨웠는지도 몰랐습니다.”

“장바닥이 그리 편한 걸 보니 장사꾼이 맞기는 맞는가벼!”

천용백이 늦잠을 잔 최풍원을 놀리느라 하는 말이었다.

“형님, 속도 달랠 겸, 장꾼들 몰려오기 전에 뜨듯한 장국밥이나 한 술 뜨러 가십시다!”

“장이도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

“글쎄요.”

최풍원이 망설였다.

천용백이는 최풍원이의 나귀도 데려와야 하니 어제 그 주막으로 가서 요기를 하자는 말이었다. 지난 밤 김주태의 무뢰배들에게 쫓겨나며 나귀를 주막집 마굿간에 그대로 두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풍원은 주막집으로의 행보가 선뜻 내키지 않았다. 결코 김주태가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꼴딱지도 보기 싫은 놈과 아침부터 부닥치기가 싫어서였다. 또 부닥쳐서 득 될 것이 조금도 없어서였다.

“왜 내키지 않는가?”

눈치 싼 천용백이 최풍원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형님, 나귀는 내 알아서 할 테니, 다른 주막으로 갑시다!”

두 사람은 어제 다툼이 있었던 수산 장터 중심의 주막집과는 반대로 걸어 주막집을 찾아나섰다.

수산장은 역시 다른 장과는 달랐다. 청풍관아에서 청풍장 다음으로 큰장이 수산장이었다. 그런 큰장답게 주막집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큰장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많이 꼬여야 했다. 사람들을 많이 꼬이게 하려면 사람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 무엇들이 있어야 했다. 그 무엇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그 무엇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최풍원이 북진본방과 각 임방들의 활로를 모색해내려면 이번 오일장 순회에서 그 무엇을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장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특별한 물산 몇몇 가지만 제외하면 장터에서 거래된 물산은 거기가 거기였다. 더구나 지금은 춘궁기라 장마당에 나오는 물산들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어느 장을 가도 장을 보러 나오는 장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식량이었다. 최풍원은 오일장 순례를 끝내면 곧바로 충주 윤 객주 상전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저리로 가지?”

천용백이 장터 한쪽 공터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장사를 하는 난전을 가리켰다. 아마도 장날만 일시적으로 판을 벌여 장사를 하는 밥집 같았다. 최풍원과 천용백이 난전 밥집에서 깔아놓은 짚방석에 앉았다.

“세상이 우째 될라고 사람들이 이래 점점 사물어지나 모르겄네. 글쎄 지난 파수에 봉화재 밑 덕곡 골탱이에서 소몰이꾼이 당했다는구먼!”

그 역시 허기를 달래려고 난전 밥집을 찾아온 장사꾼이었다. 장에 오는 장꾼들이라면 집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장에 나왔을 터이니, 장사꾼이 아니면 이런 이른 신새벽부터 국밥집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소장수 당하는 것이야 그게 어디 첨이우?”

천용백이 장사꾼 이야기를 받아 참견을 했다.

“그런 일이라면 뭣 하러 입 밖에 내겠수!”

“그럼, 뭔 일이 일어났기에 그러시우?”

“예전에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나 도둑질을 하지 않았우. 그것도 물건이나 빼앗고 사람은 보내주지 않았소. 그런데 봉화재 소장수는 대낮에 당했다는구먼. 그것도 아주 사람을 참혹하게 죽였다는구먼유. 더구나 봉화재는 사람들 왕래도 많고, 봉수대에는 봉화를 지키는 군졸들도 여럿이 있었다는데 그 턱 밑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어디 길이든 맘 놓고 다닐 수가 있겠소?”

그 장사꾼은 참으로 난간하단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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