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오늘도 어김없이 대금 소리가 새벽의 푸르스름한 산봉우리를 깨웠다. 내가 좋아하는 황병기의 ‘비단길’이었다. 촉촉한 음향이 내 마음을 적셨다. 누구일까?

내내 내 뒤를 쫓던 연주는 골짜기를 휘돌 때에야 멈췄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는 다른 봉우리에서 터져 나온 노래가 산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그는 요즘 들어 자주 이곳 북한산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 성악가는 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로 시작하여 오페라의 아리아를 메들리로 이어 부르다 ‘그리운 금강산’으로 끝을 맺곤 했다. 내 발걸음이 절로 흥겨워졌다.

그때 앞서가던 중년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섰다. “좀 조용히 해! 제발 노래 좀 하지 말라니까! 여기 사는 동물들 다 도망가겠어!” 반말로 크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노래하는 이와 무슨 견원지간인가 싶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지나가던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산에서 저렇게 크게 노래를 부르면 동물들이 무서워해요. 오래 못 살고 점점 사라지고 있다구요. 아주머니도 노래 좀 그만하라고 소리 한 번 크게 질러주셔요.” 그는 분이 안 풀린다는 듯 씨근거리며 등산객들에게 동조를 구했다.

“여기서 고함지른다고 저 윗 산까지 들릴까요?” “그러니까 여럿이 함께 해야지요.” 그는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서성이던 사람들도 놀란 듯 산으로 흩어졌다. “노래보다 저 소리 때문에 동물들이 다 도망가겠다.” “새벽부터 시끄럽게 왜 저런담?” 여기저기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 정황과는 아랑곳없이 노래는 힘차게 이어지고 있었다.

산에서 행해지는 연주를 나름 즐기고 있던 나였다. 인간에게는 아름다운 연주가 산짐승들에게는 큰 고통이 되고 있었다니!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새벽부터 산은 사람들로 붐빈다. 부지런한 어르신들을 비롯해 운동부터 챙기고 출근하는 장년층, 아이들 깨기 전에 후딱 다녀가는 젊은 엄마들, 건장하게 몸을 다지고 있는 대학생 등등, 층이 다양하다. 쩌렁쩌렁 크게 음악을 튼 사람,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뉴스를 듣는 사람, 깔깔 거리며 먹거리를 나누어 먹고 수다를 떠는 무리 등도 빠지지 않는다. 조용히 산행하고 싶었던 나는 되풀이되는 소란에 눈살을 찌푸리곤 했지만 불식간에 소음에 둔감해져 있었다.

오래 전부터 산마루에는 ‘쾌적한 공원 탐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소음 행위(고성, 스마트폰, 라디오 등 음향포함)를 금지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산에서 고성을 지르지 마세요. 동물들이 놀랍니다.’라고 쓰인 현수막들이 붙어있었다. 그 앞을 예사로 지나치곤 했던 나는 오늘따라 그 푯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야호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늘 듣던 소리였건만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동물들이 화들짝 놀라 우왕좌왕하는 환영이 스치기 시작했다. 제발 소리가 빨리 멈추길 기다리며 가슴을 졸였다.

소리뿐만 아니라 핸드폰의 전자파가 동식물을 긴장하게 한다는 신문보도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무심결에 들고 온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습관적으로 목에 걸고 다니던 이어폰도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산야의 생물이 다 나를 지켜보며 반응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발소리조차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침묵에 잠겼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가 슬며시 가슴에 고이기 시작했다.

일전에 자그마한 종을 배낭에 매단 사람을 만났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 연유를 물었더니 뱀이 듣고 사람을 피해가라는 뜻이란다.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산짐승들과 서로 윈-윈(win-win)하려는 지혜였다. 우리에겐 여가를 즐기는 곳이지만 녀석들에게는 이곳이 삶의 터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남의 집을 방문할 때 지녀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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