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문 수  < 충청대 영어통역과 교수 >

충청매일는 근래 얌모 얌모 콘서트와 진시황제의 유물전시회를 주최한데 이어 이번에는 보현스님의 음악회를 주최하며 문화기획사업 활동을 활발히 펼쳐나가고 있다. 지역 문화창달과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

이번에 열리게 된 보현스님의 음악회는 조용한 산사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불경을 외우거나 참선에 몰입하는 것으로 인식됐던 스님이 음악회를 열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스님이 음악회를 여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의미가 큰 것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불교계가 음악을 통한 포교를 최초로 시도하는 음악회라는 점이다.

보현스님의 음악회는 다른 종교에 비해서 침체돼 가고 있는 듯한 현실에서 불교계의 변화의 성공여부와 향후 발전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실험적 무대였던 것 같았다.

음악 통한 포교 최초 시도

그러나 정작 음악회가 관심을 끈 것은 그러한 문제를 떠나 전에 연예계에서 화려하게 주목을 받았던 음악적 재능과 준수한 용모를 지닌 스님이 펼치는 음악 무대라는 점이다.

조지훈의 시(詩)인 승무를 연상시키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회는 짧게 깍은 파르스름한 머리와 함께 가녀린 용모를 지닌 스님이 어둑한 조명아래서 합장으로 청중에게 불심이 넘치는 인사를 했을 때 이미 그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음악회는 불교적 특성이나 색채로 보아 일반 음악회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님의 호소력 넘치는 노래와 김병조 교수의 재기가 넘치는 코믹한 사회 그리고 스님들의 다양한 음악적 재능이 함께 어우러져 다른 음악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독특한 음악회였다. 음악회를 보면서 이제는 불교계도 설법을 통한 중생구제만이 아니라 변하는 사회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구제를 모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세속을 멀리하고 정진해 불법을 깨우쳐 중생을 구제하려는 관점에서는 일탈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음악회가 더욱 뜻 깊었던 점은 음악회가 보현스님 개인을 위한 음악회이였든 불교계의 변화를 위한 상징적인 무대이였든 보현스님이 장애인들을 돕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을 잘 드러낸 점이었다.

장애인들을 돕는 단체는 보현스님이 운영하는 ‘부처님 마을’ 만이 아니라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현스님이 장애인들을 돌보며 사랑을 베풀고 있는 봉사심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스님은 장애인들에 대한 보살핌으로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스님의 장애인들에 대한 마음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스님이 어떠한 길을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애인들에 대한 그 같은 봉사심은 자비의 마음이 아니고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과찬이 아니라 찬조 출연한 가수의 우담바라라는 노래처럼 스님의 장애인들에 대한 사랑은 삼천 년 만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 꽃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유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장애인 보호단체 지원 필요

세계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그에 따른 다른 그늘도 함께 커져가고 있다. 이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지고 가야 할 짐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그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회곳곳에는 장애인들을 돌보는 단체가 산재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복지차원에서 시설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 그에 대한 실태 파악과 함께 개인의 부담을 줄이고 부작용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재정적 지원하거나 문제를 찾아 개선하는 일은 필요하다.

보현스님의 장애인들을 위한 자비의 실천은 장애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아니라 사회와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음악회를 보면서 보현스님처럼 장애인들을 돌보는 선행이 잘못된 목적이나 의도로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보현스님이 펼치는 사랑의 음악회가 세상을 밝히는 씨앗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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