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더 높은 값을 정하는 사람에게 쌀을 팔겠다는 말이었다. 한 마디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살 사람은 많은데 물건은 극히 소량을 내놓고는 사람들끼리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엄연히 장사에도 상도덕이 존재했다. 사람들의 다급함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려는 속셈이었다.

그것은 상술도 아니고 사기였다. 곡물전 앞에 몰려든 사람들도 상전 주인의 행위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상인들이 하는 대로 끌려가는 것은 워낙에 처지가 다급했기 때문이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 어느 정도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것은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격식을 갖추거나, 체면을 차리거나, 정의를 내세워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도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버거운 사람들에게는 사치였다.

“주인장, 일 전을 줄 테니 쌀 두 되만 주시오!”

사람들 악다구니 속에서 누가 소리를 질렀다.

“이건 아무리 못 받아도 삼 전은 넉넉히 받을 수 있을 테니 쌀 반 말만 주시구려!”

걸빵을 맸던 사내가 등에서 보퉁이를 풀어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주인에게 통사정을 했다.

“난 오 전을 주겠소!”

쌀값이 치솟고 있었다. 말도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곡물전 주인이 내놓은 쌀은 한 섬에 석 냥이나 나갈까 말까하는 품질이 나쁜 하질이었다. 한 섬에 석 냥이면 한 말에 삼 전, 한 되에 삼 푼이면 충분한 가격이었다. 일전이 십 푼이니 쌀 서 되를 사고도 한 푼이 남는 돈이었다.

그런데 일 전을 줄 테니 쌀 두 되만 달라고 했다. 걸빵을 맸던 사내는 한 술 더 떠서 삼 전도 넘도 약초를 넘겨주고 쌀 반 말을 달라고 했다. 쌀 반 말이면 다섯 되었고, 다섯 되면 일 전 닷 푼이면 평소 거래가 성사되던 가격이었다. 그런데 배가 넘는 돈을 주고도 걸빵 사내는 곡물전 주인에게 통사정을 하는 형편이었다. 어떤 사람은 오 전까지 주겠다고 했다.

오 전이면 쌀 두 말을 살 수 있는 값이었다. 그런데 오 전을 주고도 쌀 반 말을 구하지 못해 동동거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청풍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청풍장 곡물전마다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최풍원은 쌀을 사려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을 보며 읍리 나루터로 향했다. 금수산과 비봉산 줄기를 가르며 흐르는 남한강가에 자리 잡은 읍리나루는 강 하류에서 배를 타고 청풍으로 오는 사람이나 물산들이 부려지는 곳이었다.

또 강 상류로 가는 소금배나 경강상인들의 주간 기착지가읍리나루였다. 또한 청풍읍 중심인 읍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청풍에 물자를 공급하는 중요한 나루터였다. 읍리나루에서 강을 건너면 향교가 있는 교리였다.

읍리나루터에는 작은 배들이 여러 척 떠있고, 그 사이에 큰 배 두 척이 강가에 닻을 내린 채 무언가 분주하게 내리고 싣고를 하고 있었다. 최풍원은 담꾼들이 싣고 내리는 물산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주로 내리는 물건은 뭐고 싣는 건 뭐요?”

최풍원이 뱃전을 오르내리며 짐을 나르는 담꾼에게 물었다.

“내리는 건 소금섬과 어물이고, 싣는 것은 약초와 곡물들이오.”

“고을민들은 먹을 양식이 없어 배를 주리고 있는데, 소금이나 어물들이 팔린답디까?”

“그거야 굶는 놈들 얘기고, 있는 사람들은 안 먹는답디까?”

담꾼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풍원도 수긍이 갔다.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고을민이나 굶는 것이지 소수의 양반들이나 지주들은 천지개벽을 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농민들이야 멀건 죽 끓일 양식도 없어 풀죽을 끓여먹고 있지만,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남이 어려울 때 더 잘 벌어들이고 더 잘 먹고 있었다.

“그런데 곡물들은 주로 뭐가 실려나갑니까?”

“지난 가을에 거두어놓았던 콩 종류들이 많소.”

청풍 인근에는 산지가 많아 논작물보다는 밭작물과 임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었다. 밭작물은 보리·조·수수·콩·땅콩·마늘·고추·감자·고구마·참깨가, 임산물로는 약초·더덕·대추·산채·호두·송이버섯, 인삼·칡 등이 철철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것들을 팔아 주식인 쌀을 들여오는 통로가 읍진나루였다.

그런데 고을민들이 쌀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들인데 청풍도가의 상전들은 경강선을 통해 식량을 들여오지 않고 부식인 소금이나 어물만 나루터에 부리고 있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식량이 없는데도 상전에서는 소량이지만 끊임없이 곡물들을 내놓고 있는 것이 최풍원으로서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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