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낙엽이 한잎 두잎 떨어지고 첫눈이 내리는 11월이다. 솔로(solo)사는 세상이라지만 부평초(浮萍草)처럼 떠돌던 내 마음에도 쓸쓸함과 고독이 밀려든다. 11월은 외로움을 벗어나 두 막대가 짝을 이루는 상징성이 있다. 그래서 11월 11일은 젓가락의 날, 또 ‘빼빼로데이’라고 어린이는 빼빼로 과자를 사먹고 ‘가래떡을 먹는 날’이기도 하지만 십일(十一)을 흙토(土)자로 해석해 흙을 사랑하는 ‘농업인의 날’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젓가락에 얽힌 인간의 삶의 향기를 기념하기 위한 세계 최초로 ‘젓가락의 날’을(2015년 11월 11일) 청주에서 선포했다.

1이라는 숫자는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외로운 사람을 연상시켜 쓸쓸한 느낌이 든다. 두 막대가 맞 붙어서 짝을 이루어야 제구실을 할 수 있기에 11은 젓가락처럼 마치 부부가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같이 느껴진다. 일찍이 공자(孔子)께서도 사람다움을 인(仁)라는 말로 요약했다. 그 인은 혼자서 행하는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서 생겨나는 덕성(德性)이라 했다.

옛날 원시시대는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었겠지만 식생활문화가 발달하면서 젓가락이 발전되어온 것이다. 그것은 동양 3국에서는 중국이 제일먼저 발전 했고 한국과 일본은 그 다음이라는 기록이 있다. 젓가락의 크기와 모양도 각국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중국은 길고 일본은 짧고 한국은 그 중간이다. 서양에서는 젓가락 대신으로 포크를 사용하고 나이프로 썰어먹는 것도 식생활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만 젓가락이 포크사용보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30~50%가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ler(1928-2016)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고 했다.

나는 식사 때마다 젓가락을 들기만 하면 한평생 젓가락질하듯 살아온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머님이 중풍에 반신불수가 되어 젓가락질을 못하시니 아내가 숟가락에 반찬을 집어 올려 드리고, 젖 먹던 어린 내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젓가락질을 못 익혀 반찬에 손이가면 어머니가 젓가락으로 집어주시던 환영(幻影)이 자꾸 떠오른다. 어쩌면 젓가락질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배워야하는 덕행(德行)이요. 살다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손을 놓아야하는 인덕(仁德)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두발로 걸어 다니고 두 손을 흔들듯 아내와 한평생을 동행(同行)하여온 동반자! 일심동체가 되어 행복의 꿈을 찾아 헤매던 모진세월이 내 가슴속에 스며드는 젓가락 사랑이 아닌가 싶다.

식사 때만 되면 만져보는 은수저! 아내가 시집올 때 보물처럼 싸온 것이지만 50년 세월의 무게만큼 광택을 잃어간다. 그러나 그 빛바랜 은빛 속에 비쳐진 삶의 흔적에는 눈물어린 시련도, 무지갯빛 환희도 고스란히 담겨 있으리라. 젓가락질이 두 막대기의 묘기라면 긴 겨울밤 적막을 깨고 울리는 다듬이 소리도 젓가락질 못지않은 묘기가 아니던가. 똑딱 똑딱. 지금은 듣기 어려운 추억의 향수(鄕愁) 지만 방망이 하나로 낼 수는 없는 소리다.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늘 젓가락질을 하고 살아도 그 젓가락에 묻어나는 삶의 의미와 사랑을 잊고 살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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