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론리 담배는 백여 리가 떨어진 강원도 영월까지 소문이 나있어 ‘연론 담배가 절단나면 영월담배가 절단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말은 연론 담배가 흉작이 되면 영월 사람들은 담배를 굶는다는 말이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연론에서 생산되는 담배는 몽땅 강원도 영월 땅으로 팔리고 있었다.

청풍도가와 통하는 육로를 막아야 할 곳은 또 있었다. 청풍과 제천으로 통하는 길목의 학현이었다. 인근 마을사람들은 학현 마을을 학고개로 불렀다. 그 이름에서처럼 마을이 금수산에서 흘러내린 세찬 줄기 사이로 길다란 골짜기를 따라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워낙에 깊은 골짜기에 산골이라 주민들의 주업은 화전이었다. 그러나 산이 높고 넓어 그곳에서 나오는 임산물이 풍부했다. 학현리 사람들은 때로 제천장을 보러 가기도 했지만 그것은 우시장을 갈 때처럼 특별한 경우였고, 대체로 이십 여리 떨어진 청풍읍장을 다니며 산에서 나온 임산물과 화전에서 거둔 잡곡을 필요한 물품들과 물물교환 했다. 

청풍에서 제천 가는 길은 강을 건너 북진나루를 통하는 길과 다리품을 팔아 걸어서 학현을 거쳐 가는 방법이었다. 대부분 행상이나 등짐장수들이 험하기는 했지만 학현을 통해 제천과 청풍을 왕래하는 것은 위험한 뱃길과 뱃삯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장사꾼들은 제천의 물건을 청풍에 가져다 팔고, 제천에서 귀한 물건을 청풍에서 구해다 팔았다. 장사라는 것이 필요한 물건을 사러갔다가 그 물건이 없으면 다름 물건을 파는데도 지장을 주는 법이었다. 또, 애초에 사려고 했던 물건이 아닌데도 장에 들렸다 이것저것 구색을 갖춰놓은 전을 보면 욕심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청풍읍장의 그런 구색을 갖추는데 제천장을 오가며 행상을 하는 장사꾼들이 학현 길을 이용하였다.

풍원이는 장차 이런 장사꾼들을 학현에서 잡아 발길을 북진으로 돌릴 요량이었다. 학현의 임산물과 곡물이 청풍읍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도 막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청풍읍장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북진은 활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로 두 가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학현이었다.

풍원이가 전과 집산소를 내기위해 청풍인근을 돌아보니 생각하던 것과 시제는 다른 것이 많았다. 애초 풍원이는 청풍도가를 고립시키기 위해 청풍도가를 중심으로 곳곳에 전을 낼 생각이었지만 직접 발품을 팔며 다녀보니 그렇게 많은 전이 필요하지는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을과 마을의 길목이 중복되는 곳이 많았고, 전과 전이 너무 가까워 오히려 서로 충돌하기 십상인 곳도 나타났다. 그렇게 이곳저것 제외하고 나니 우선 당장 전과 집산소를 차릴 마을로 광의리·교리·양평리·단리·연론리·학현리 등 여섯 곳이었다. 그리고 각 전과 집산소를 맡은 책임자를 물색하여 정했다. 광의리 김길성·교리 류덕기·양평리 이상만·단리 신석근·연론리 박한달·학현리 배창령이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순갑이가 풍원이에게 물었다.

“형님은 당연히 하던 대로 북진 전을 책임져야지. 그리고 다른 전들의 대방이 돼주었으면 하는데?”

풍원이가 순갑이의 의향을 물었다.

“전이든 뭐든 장사야 하면 되겠지만, 대방은 뭘 하는 게냐?”

“형 이번에 전들을 모두 모아 계 조직을 하나 만들려고 해.”

“장사만 하면 되지 뭔 계를 만들어?”

“아무래도 혼자 하는 장사가 아니니 서로 상의해야 할 일이 있지 않겠어?”

“글쎄다. 장사를 하는데 뭔 상의할 것이 있을까?”

혼자만 장사를 그것도 집에 앉아서 찾아오는 손님만 받던 순갑이는 풍원이가 말하는 뜻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형님, 앞으로 북진을 본방으로 삼고, 각 전들은 임방으로 삼을 것이요. 그러면 순갑이 형님이 임방의 제일 큰 형님이 되어 주시는 일이오. 그리고 각 임방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알려주는 것 그게 대방이 하는 일이고 형님이 해줬으면 하는 일이오.”

풍원이가 순갑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그럼 단양 조산촌 큰머느실 익수는 어떻게 하지? 또 두출이는?”

풍원이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순갑이가 물었다.

“역시 잘 챙기는 걸 보니 큰형님 될 자격이 충분하네! 당연히 이번 임방들의 첫 회합에 오도록 기별을 넣어야지.”

풍원이가 순갑이를 띄워주었다. 각 전과 책임자가 정해지자 풍원이는 기별을 넣어 모든 임방주들은 북진으로 모일 것을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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