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손 쳐도 풍원이에게 다른 방도는 없었다. 풍원이가 충주 윤 객주 상전을 찾아갔다.

“물건을 대준다면 넌 뭘루 댓가를 치르겠느냐?”

윤 객주가 물었다.

“객주어른, 저를 못 믿으십니까?”

풍원이가 당차게 되물었다.

“나는 널 못 믿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만약 내가 물건을 대준다면 그 대신 너는 내게 뭘 내놓을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지금은 당장 객주어른께 대가로 드릴 것이 없습니다요.”

“장사는 주고받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내게 줄 것이 없다는데, 내가 뭘 믿고 그 많은 물건들을 대줄 수 있단 말이냐?”

“객주어른, 제 간절함을 봤다고 하시지 않으셨는지요?”

풍원이가 느닷없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무슨 소리더냐?”

윤 객주가 영문을 몰라 의아해했다.

“그러시지 않으셨던가요? 유주막에서 처음 객주어른을 처음 뵈었던 날 저를 보고 ‘저놈은 반드시 장사꾼이 되겠다’고 하셨던 말씀을요. 그 생각이 바뀌셨는가요?”

“내가 그랬었냐?”

짐짓 윤 객주가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뗐다. “절대로 객주어른께 해를 끼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어른 공덕을 생각한다면 그리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절 믿으시고 한번만 더 밀어주신다면 석 달 안에 원금과 이문까지 몽땅 드리겠습니다.”

풍원이로서는 어떻게라도 윤 객주 마음을 돌려 집산소 전에 깔아놓을 물건들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것부터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그 다음 일은 진전시킬 수 없었다.

“이눔아! 아무리 급해도 무슨 일을 그렇게 더듬하게 하느냐?”

윤 객주가 갑자기 풍원이에게 질타를 했다.

“왜 그러시지요?”

“원금과 이득금가지 몽땅 주는 그런 거래가 어디 있느냐. 그러고 난 다음에 너는 뭐로 장사를 할 것이냐. 한 번만 해먹고 접을 장사가 아니라면 아무리 급하다 해도 그렇게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불공평하게 거래를 트면 끝까지 물리는 거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열심히 장사를 해도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여!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그런 장사를 뭣하러 하느냐?”

영문을 몰라 당황해하는 풍원이에게 윤 객주의 꾸지람이 쏟아졌다.

“제가 객주어른께 해드릴 것이 없는데 그렀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매사 솔직한 것이 능사는 아니다. 없더라도 때로 장사는 있는 척도 해야 하고, 얻어먹더라도 당당하게 얻어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는 사람도 믿음이 갈 것 아니냐? 솔직함이 경우에 따라서는 비수가 되어 네 가슴을 찌를 수도 있다. 그러니 함부로 너의 속내를 까발리지 말거라!”

윤 객주가 거래를 틀 때의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일러주었다.

“객주어른, 물건을 대주실 있는지요?”

윤 객주가 일러주는 장사 요령보다도 풍원이는 그것이 더 급했다.

“풍원아, 상대에게 그렇게 급한 모습도 보이지 말거라! 그리고 상대방 의중도 묻지 말고 자신 있게 요구하거라!”

윤 객주는 풍원이에게 자신의 급한 마음을 상대에게 보이거나 상대의 의견을 물어보는 따위의 일도 상대방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며, 절대로 꼬투리 잡힐 기미는 보이지도 말라며 훈계했다.

“객주어른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전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니가 아주 생떼를 쓰는구나. 알았으니 세세한 것은 우갑 아범과 상의를 하거라!”

윤 객주의 말을 쫓아 풍원이가 우갑 아범에게로 갔다. “객주 어르신과는 얘기가 끝났더냐?”

“세세한 것은 어르신을 만나 상의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럼 상전에서 대줄 전 집은 모은 몇 군데나 되며, 품목은 어떻게 되느냐?”

우갑 노인이 물었다. “객주어른께서 물건을 대주시른지 어찌 하시런지 몰라 만나 뵙고 결정이 되면 그 다음에 집산소를 모집하려고 해서 아직은 모릅니다요.”

풍원이는 대답을 하면서도 일처리를 더듬하게 한다는 소리나 듣지는 않을까 염려되어 우갑 노인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그런 일처리는 잘 했구나. 만약 네가 집산소부터 만들어놓고 왔다가 거절을 당했다면, 네가 지금까지 장사하며 쌓아놓았던 거래관계가 어그러질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이다. 이번 일을 순서를 따라 처리한 것은 네가 참 판단을 잘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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