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란의 해피마인드] 엽서
[오정란의 해피마인드] 엽서
  • 충청매일
  • 승인 2017.09.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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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나는 일 년에 한 번 엽서를 쓴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이상하게 두고 온 일상이 생각난다. 그래서일까? 가까이 지낸 사람들에게 그리운 마음을 담아 엽서를 쓴다. 떠난 지 며칠이 되지 않았음에도 낯선 땅에 발이 닿으면 두고 온 곳으로 그리움이나 애틋함, 고마움이 재빨리 자리를 차지한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세상을 움직이는 코드들이 디지털로 변환되면서 엽서를 쓰는 일은 이제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굳이 기다려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는 일은 유행이 한참 지난 옷을 애써 꺼내 입은 꼴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는 각종 단체 카톡 방에서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감정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생일날 같은 특별한 날에는 손편지를 쓰는 일을 즐긴다. 그리고 나만 쓰는 손편지에 그치지 않고 또 받기를 고집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버이날이나 생일날에는 그래도 종종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손 편지나 생일 카드를 받았었다. 몇 줄 되지 않는 생일 카드를 받는 일도 이제 온라인으로 전달되는 이모티콘으로 대체 되어버렸다. 나는 아이들에게 애원하다시피, 때로는 강요하기도 하고, 엄마의 절박함을 내비치기도 해 겨우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내용의 손 편지를 받는다. 아이들이 써준 편지나 카드, 엽서는 내 마음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것은 통장의 잔고보다도 내게는 소중한 자산이다.

올해도 떠난 여행지에서도 나는 엽서를 썼다. 아이들에게, 가까운 친구들에게 여행지에서 산 그림엽서에 그 순간에 느끼는 감상을 담아 엽서를 써 보냈다. 엄마가 엽서를 쓰다 보니 아이들도 여행을 가게 되면 엄마인 내게 엽서를 보낸다. 때로는 내가 엽서보다 먼저 돌아와 내가 보낸 엽서를 우편함에서 발견할 때, 마치 다시 여행지에 있는 듯, 에너지가 환기된다. 보낸 사람보다 늦게 도착한 엽서를 읽는 일도 설레는 일이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많은 감정의 고비를 넘는다. 때로는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하루를 마감한 날들도 무수했으며,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밤새 꿈속에서 피하고 싶은 그 시간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런 밤 나는 편지를 썼었다. 불안한 마음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격정이 몰아칠 때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딱히 대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 격정의 파노라마를 누군가가 공감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유의미한 타인에게 받고픈 긍정적인 피드백이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날이 쌀쌀해지고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편지 보관함을 연다. 지나온 나의 행적을 다시 따라 걸으며 이 모든 것이 과정에 있다는 것을, 어느 한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았다는 것을 체감한다.

편리함에 익숙해지다 보니 잊어버린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누구를 생각하며 또박또박 마음을 담아 글을 쓰는 일, 잘 익은 과일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단맛처럼 하루 중에 누군가를 떠올리며 쓰는 엽서는, 내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며, 내 몸의 피가 골고루 돌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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