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품삯으로 쌀 한말을 받았다면 횡재도 이만저만한 횡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순갑이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그런데 장석이는 눈치도 없이 콧노래를 부르며 휘적휘적 날아가듯 걸었다.

“두 형님들, 우리 앞으로 열심히 장사해서 돈 많이 벌자!”

“풍원아 고맙다. 다 니 덕이다!”

장석이 목소리가 날아갔다.

“…….”

여전히 순갑이는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

풍원이와 장석이는 쌀 한 섬씩을 나눠지고 신이 나서 청풍을 향해 걸었다. 순갑이는 빈 지게를 지고도 자꾸만 걸음이 뒤쳐졌다. 풍원이와 장석이가 얼마나 날 듯 걸었는지 대림산성을 끼고 달천강을 돌아 노루목에 도착했는데도 한낮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풍원아, 가는 길에 살미장 구경이나 하고 가자!”

노루목을 지나며 장석이가 말했다. 노루목을 빠져나가면 살미는 지척이었고, 살미에서 청풍은 사십 여리 길이니 장에 들렀다가도 서두르면 해가 넘어가기 전 충분히 당도할 거리였다. 장석이도 인근에서 살미장이 꽤 유명하다는 것을 풍월로 들어 알고 있었다.

“살미장에?”

살미장을 들르자는 말에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들떠있는 장석이 마음에 찬물을 끼얹기 싫어 풍원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되묻기만 했다.

“그깟 장구경은 해 뭣해!”

장석이 말끝에 순갑이가 또 심통을 부렸다.

“형 그러지 말고 온 길에 들렸다 갑시다!”

풍원이도 순갑이를 구슬렀다. 어차피 같이 가는 중이었고,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그만큼 마음이 든든해서였다.

“돈도 없고, 난 그냥 갈란다. 내 쌀이나 줘라!”

순갑이가 자신은 혼자 가겠다며, 풍원이에게 품값으로 주겠다던 쌀을 달라고 했다. 풍원이가 장터 머리에서 지게를 내려놓고 쌀을 퍼주었다. 순갑이는 쌀을 받아가지고 청풍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순갑이가 떠나가고 풍원이와 장석이는 지게를 섬을 진 채 어정어정 장터로 들어섰다.  향시가 열리는 날이 아닌데도 장터에는 갖가지 곡물들이 전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잡화를 파는 상전도 보였다. 청풍장에 비해도 살미장이 더 활기가 있었다. 아무래도 청풍 읍장보다는 살미장이 사람들 왕래가 잦은 까닭이었다.

“풍원아, 어물전에 좀 가보자.”

“왜?”

“굴비 한 손 사서 어머이 갖다드리려고.”

“충주 윤 객주 댁에서 사지 그랬어?”

“아까는 너무 좋아 그 생각을 못했어.”

“그렇게 좋아?”

“그럼 안 좋아? 돈 벌었는데!”

“형네 엄마는 오늘 좋으시겠네.”

그렇게 말하는 풍원이 얼굴에 순간 그늘이 스쳐갔다.

“풍원아, 미안허다.”

“아냐, 형이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좋아!”

한 칸이 될까 말까한 너비에 이엉을 얹은 어물전은 장터 끄트머리쯤에 있었다. 어물이 빈약하기는 했지만, 장석이가 사려던 굴비가 새끼줄에 엮인 채 처마 서까래에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었다. 손님이 뜸한지 어물전에는 쪽진 노파가 마룻바닥에 앉아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여봐유! 저 굴비 얼매유?”

“왜, 사려우?” 

졸다가 깜짝 깨어난 노파가 반색을 했다.

“얼매유?”

장석이가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무덤덤한 소리로 물었다.

“저거 아주 좋은 굴비라우.”

노파가 장석이 눈치를 슬쩍슬쩍 살피며 굴비 값을 가량했다.

“글쎄, 얼매냐니까유!”

굴비 값은 말하지 않고, 자꾸 딴소리만 하는 노파에게 짜증난 장석이가 신경질을 부렸다.

“뭐가 그리 급하우? 저거 한 두름 다 가져가려우?”

“한 손만 줘유!”

“에게!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그까짓 것을 누구 코에 붙이려우?”

노파가 장석이를 훑어보며 슬슬 약을 올렸다.

“왜 돈이 없슈. 저기 지게에 섬이 안 보이유? 저기 다 쌀이유!”

풍원이가 돈 자랑을 하지 말라며 장석이 옆구리를 찔렀다. 그래도 장석이는 여전히 눈치를 채지 못하고 주인에게 엮이고 있었다.

“그깟 쌀 몇 푼 나간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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