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722년, 정(鄭)나라 장공(莊公)이 즉위하였다. 이전에 장공의 부친인 무공은 신씨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신씨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큰아들 장공은 난산의 고통을 안겨주어 미워하고 둘째 공숙단을 유난히 편애하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공에게 찾아가 둘째를 왕위에 오르도록 해달라고 간청할 정도였다. 그로 인해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어쨌든 무공이 죽자 큰아들 장공이 왕위에 올랐다. 이때 신씨는 둘째 아들를 위해 장공에게 제 지역을 봉읍으로 내려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장공이 대답했다.

“어머니, 그 지역은 아주 험한 곳입니다. 예전에 그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오니 다른 곳을 택해주시면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신씨는 경 지역을 요청했다. 장공이 별다른 말없이 그 지역을 동생에게 봉읍으로 하사했다. 둘째 공숙단을 그 곳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경성태숙이 되었다. 얼마 후에 신하 채중이 장공에게 아뢰었다.

“선왕께서 만든 법도에 따르면 아무리 큰 고을도 그 크기가 도성의 3분의 1을 넘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성이 군주께서 계신 이곳 도읍에 버금갈 정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장차 군주께서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장공이 말했다.

“경 지역은 어머니께서 동생을 위해 원하신 곳이니, 내 어찌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할 수 있겠소?”

 채중이 다시 아뢰었다.

“사람의 욕심이 어디 끝이 있겠습니까? 공숙단이 비록 군주께서 사랑하는 아우라고 할지라도 더 이상 세력이 커지지 않도록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들판에 풀들도 멋대로 자라서 무성하게 엉키면 잘라낼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못된 세력이 커지면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장공이 말했다.

“행동이 옳지 못하면 스스로 멸망하는 법이오. 그러니 잠시 기다려 봅시다.”

하지만 얼마 후 채중의 염려대로 상황이 심각해졌다. 어머니 신씨가 조정에서 반란을 획책하고, 경 지역에서 공숙단이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급히 신하 하나가 아뢰었다.

“지금 일부 백성들이 군주보다 공숙단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두 마음을 품으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했습니다. 하오니 지금 그를 없애도록 해주십시오.”

장공이 고심 끝에 결국 혈연관계를 끊고 군대 출정을 명했다. 정나라 군대는 오합지졸의 반란군을 손쉽게 진압되었다. 공숙단은 모든 세력을 잃고 다른 나라로 도망하였다. 어머니 신씨는 반란죄로 유폐되어 한 동안 장공이 만나지 않았다. 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자만난도(滋蔓難圖)란 풀이 무성하게 우거지면 제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치 패거리, 세속 종교, 깡패 등 못된 것들이 무리를 지어 세력이 응집되면 바른 것으로 제압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쓰인다. 본래 되지못한 것들은 오냐오냐 하면 엇나가는 짓거리만 하는 법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